지역, 남북, 동서, 종교, 문화, 정치, 인종. 심지어 층간 갈등까지. 우리는 수많은 갈등 구조 속에서 살아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갈등연구소 소장은 우리 GNP의 17%가 갈등 문제 해결에 소요되는 비용이라고 하더군요.

한편 나무들은 뭔가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서로 약간 양보함으로써 햇빛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왕관 수줍음(the shyness of the crown), 또는 수관기피라 부르지요. 이 현상은 완전히 우거진 나무가 서로 닿지 않도록, 통로와 같은 틈이 있는 캐노피를 형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같은 종의 나무 사이에서 가장 흔하지만, 다른 종의 나무 사이에서도 발생합니다.

왕관 수줍음 현상의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가설이 있지만, 연구에 따르면 이 현상은 잎을 먹는 곤충·유충의 확산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관 수줍음 현상의 정확한 생리학적 근거는 불확실합니다. 이 현상은 1920년대부터 과학문헌에서 논의되어 왔습니다. 일부 가설에 의하면 가지의 겹쳐 있는 부분이 인접한 나무의 ‘상호 가지치기’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바람이 부는 지역의 나무는 바람이 불 때 서로 부딪히며 물리적 손상을 입습니다. 이러한 마찰과 충돌이 왕관 수줍음 반응을 유발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나무는 이토록 기묘하게 서로의 충돌을 피합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래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모양이지요? 부끄러움이 모두 퇴화한 걸까요? 한낱 나무만도 못해서야….

문정기
도곡면 천암리 출생
화순저널 고문
공학박사
현 만안연구소 소장, (사)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