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놀이 재현 열의 대단한 발상, 아쉬움 개선해 멋진 축제로 거듭나야
적벽낙화(赤壁落火) 놀이, 적벽팔경(八景) 중 하나
매년 4월 초파일과 정월대보름에 행해졌던 화순 전통 액막이 세시풍속
화순저널입력 : 2023. 11. 30(목) 14:54
2023 화순 적벽낙화놀이 한 장면
과거 조선시대 중기부터 시작되어 이어져 왔던 적벽의 낙화놀이는 매년 4월 초파일과 정월대보름에 행해졌던 화순의 전통 액막이 세시풍속이었다.

‘적벽 아래에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사는데 용 모양의 달집을 태워 강물에 던짐으로써 이무기를 달래고 복을 빌었다.’는 옛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더욱이 깎아 자른 듯한 붉은 절벽과 옹성산(壅成山 : 573m)의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경치 때문에 예부터 시(詩)와 글, 그림으로 느낀 감흥을 무수히 남긴 곳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 이름은 그냥 석벽(石壁)이었으나 기묘사화로 유배 왔던 문신 최산두(1519년)가 중국의 적벽과 버금간다하여 적벽(赤壁)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며 육당 최남선은 조선 10대 비경 중 하나라고 칭송했을 정도였다.

정말 푸른 하늘에 구름이라도 산허리에 걸쳐 있는 날이면 강물과 어우러져 절로 감탄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옛 벼슬아치들이 적벽강 안에서 시(詩)와 주연(酒宴)을 즐겼고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풍악도 곁들였다.

<@7> 낙화놀이는 수없이 떨어지는 낙화의 송이송이가 밤하늘을 화려한 별똥 떨어지듯 수놓던 행사로 예부터 적벽팔경(八景) 중 하나였으며 강 위에 불송이가 떨어지고 사라지고 또 이어서 무수히 내려오면서 사라지는 그런 놀이였다.

산 정상에서 불덩이를 던지는 사람은 한 사람으로 절벽의 좁고 위험한 길을 들어가는데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허리끈을 주위 소나무에 묶고 모닥불을 피웠다.

나머지 사람들이 장작 불쏘시개를 전달하면 받아서 모닥불에 불을 붙여 강물 위로 짚단을 던지는 것이다. 절벽 아래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벼락을 보며 즐거워서 환호성을 질렀고 꽹과리, 장구를 치고 노래하며 춤을 췄다.

춤추는 사람 외에도 구경꾼들은 물론 고함소리가 말도 못 할 정도였고 흥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제는 동복댐이 1970년 상수원으로 지정되면서 적벽 30m가 물에 잠기고 마을도 수몰되어 흩어지고 없어졌다. 불쏘시개를 만들 사람도 사라져 더 이상 볼 수 없게 돼버려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래도 금년 화순군에서 낙화놀이를 재현하려는 열의는 대단한 발상이라고 생각되며 몇 가지 아쉬움을 개선한다면 앞으로 한층 멋진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몇 가지 아쉬움이란 행사 장소와 점화 진행의 문제점, 화장실의 다변화(스포츠센터가 유일한 화장실이었음), 추위를 이길 먹거리 행사 부족, 무대공연 장소의 문제점(어떤 위치에서도 볼 수 있도록 공연장을 마련하는 문제) 등을 지적하고 싶다.

1985년부터 매년 10월 개최되던 적벽 문화제의 재현은 절경을 바라보며 옛 고향의 정취를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서 실향민은 물론 온 군민들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동복에 머물렀던 김삿갓은 물론 한시(韓詩)로 표현한 이발의 유적벽(遊赤壁), 김창협의 적벽을 읊노라(赤壁題詠) 등 선인들의 발자취와 글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화순의 적벽낙화(赤壁落火)놀이에 관한 시를 소개해본다.

의시남방주작화(疑是南方朱雀火)-남방의 주작 별빛이
산위만점벽공타(散爲萬點壁空隋)-푸른 하늘을 수 놓은 듯 하여라
난부수면각의어(亂孚水面却欹漁)-물 위를 어지럽게 날아 고기를 놀리네
시견노발도입가(時見怒髮䑬入舸)-때로는 성난 고기 배 위에 뛰어오른다.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화순저널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