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나부끼는 낙엽을 올려다보다 문득 추억이 떠오른다. 기억 저편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사무치는 그리움 하나 가슴에 품고 사는 듯하다.

서걱서걱 발걸음 소리 내며 웃음꽃 피우던 시절로 데려다주어 홀로 걸어도 함께 걷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옛 매표소 건너편 대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양 볼에 부딪힌다. 차가워진 아침 공기는 발그레 코끝을 스쳐 간다.

하얀 눈이 내리던 겨울은 손 내밀면 아스라이 닿을듯한 느낌인데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아쉬움을 뒤로 해야만 했다. 따스한 봄과 여름날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어 우산을 내밀던 벗의 배려가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가을이 되어 화순군에 위치한 운주사를 다시 찾아보았다. 그리운 이들이 떠오를 때면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챙겨 들르는 곳이다. 차에 시동을 걸고 오는 동안 차창 너머로 논밭의 오곡백과를 한참 뒤로하고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느껴지지 않아 집중하며 그곳 주차장에서 책장을 넘긴다. 시상(詩想)이 남다르다.

화순군 운주사 대웅전 ‘풍경(風磬)’ -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중에 수록된 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그의 시 <수선화에게>에서 나온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말라면서. 자연의 경이로움 끝에 모든 이치와 만물이 외로움 때문이라고.

높은 곳에서 와불님을 뵙고 너른 하늘을 바라보다 그리움이 켜켜이 쌓인 운주사 대웅전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일정한 박자와 음률의 염불 소리가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한다. 운주사 대웅전을 올려다보니 시에 나오는 ‘풍경(風磬)’이 눈에 띈다. 풍경은 처마 끝에 다는 작은 종으로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며 종에 부딪혀 소리를 낸다고 한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사랑이라는 말은 나와 있지 않지만, ‘풍경’과 ‘바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둘의 사이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해준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연유이기도 하다.

깊어가는 계절, 2023 화순 고인돌 가을 꽃축제가 시작되었다.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한다.
<풍경 달다>를 읊으면서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칠층석탑까지 구경하길 권한다.

방방곡곡 김민지 문화평론가

* 네이버 블로그(mjmisskorea) ‘애정이 넘치는 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다.
* 방방곡곡은 다양한 책과 문화 속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