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이는 한국으로 역이민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사십여 년 여러 나라에 살아 보았지만, 의료는 역시 한국이라서 병원 출입 많아지는 말년은 한국에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나는 미경에게 한국 의료의 장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선 의료비가 아주 싼 편이야. 또 오지에 살지만 않으면 병원 접근성이 매우 좋잖아? 심지어 전문 진료 과목 의사를 별 추가 비용 없이 금방 만날 수 있고. 대기 시간을 좀 감수하면 대학병원 교수까지도 원하는 대로 만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말고 없어.’

미경의 말은 대체로 맞다. 우리나라 의료는 서비스 질에 비해 비용이 낮아 가성비가 좋다. 그러나 의료의 가성비란 철저하게 의료서비스를 받는 편에서 보는 말이고 의료 공급자 편에서 생각하면 완전히 뒤집힌 이야기가 된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체계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만들어졌다. 의사들 사이로 전해오는 일화에 의하면 당시 의사협회 회장이 남산에 불려 갔었단다. 의사들의 대표가 의사 입장에서 매우 부당하게 작성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은 이런 공포 분위기 속이었다는 것이다. 저렴한 돈을 내고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서비스 제공자의 노동력을 헐값으로 부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의료 행위에 대한 수가를 원가 이하로 책정했고 특히 국민들의 이용이 많은 필수 의료분야에 대해 더욱 원가 대비 낮은 수가를 책정했다. 그래서 지금도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일반외과의 수가는 원가 대비 70% 내외이다.

노예가 아닌 바에야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비용의 계약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이런 사실을 알려주면 의사가 아닌 사람들도 마음이 불편한 것 같다. 불편한 사실을 외면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래도 의사들은 부자로만 살기만 하더라 뭐.’

부당한 계약하에서 의사들의 제 살길 마련 역사는 제법 파란만장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의약분업 전까지는 열 병 약값을 주고 열다섯 병 약을 받는 식으로 약값 리베이트를 받는 일이 횡횡했다. 사실 정부의 초기 의료보험정책방향은 알아서 리베이트로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으므로 정부는 이런 행위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내버려두었다. 의약분업 이후 리베이트로 수가를 벌충할 수 없게 되자 의사들은 자연스럽게 진료 외 영역이나 의료보험 수가체계에 들어있지 않은 영역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비급여 진료 영역이 확대되고 의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 것은 바로 이런 흐름에 있다. 실손보험도 이 현상을 키우는데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소위 필수진료 영역은 대부분 국가 의료보험 수가체계에 들어있어 비급여항목 책정에 한계가 있다. 이제 의사들은 아예 필수진료의 영역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응급실 뺑뺑이는 그런 맥락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의사, 국민, 정부 모두 이런 흐름이 우리의료의 큰 문제라는 것은 안다. 다만 해석과 해법이 다를 뿐이다. 의사인 나는 우리 의료의 미래가 너무 두렵다.

지금 잘못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부와 의사와 시민들의 마음은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범은경
소아청소년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