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자 작사가인 양인자 씨(그의 부군이 작곡가 김희갑 씨다)는 1985년에 조용필이 불렀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노랫말을 썼다. 그녀는 1992년에도 대성공을 기록한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와 조용필이 부른 ‘서울서울서울’의 노랫말도 써서 KBS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인생의 고독함과 애달픔 그리고 허무함을 담고 있는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실제로 따라부르기에도 벅찬 곡인데다가 가사도 외우기가 힘들어서 크게 유행되지는 못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이라도 남겨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고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가사의 내용을 다시 음미하면서 당대 ‘가왕’이라는 별호를 받는 조용필의 고독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양인자 씨가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읽고 영감을 얻어서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인데, 헤밍웨이는 소설 속 주인공을 자신의 분신처럼 표현하며 줄거리를 썼다. 주인공 ‘헤리’는 아프리카에서 사파리(동물들을 찾아 원정을 나가는 여행)를 나섰다. 어느 날 영양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가다가 나뭇가지에 다리를 찔렸고 상처가 곪고 썩어들어가 결국 패혈증에 걸려 킬리만자로의 산비탈에서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헤리처럼 힘들고 지친 자신의 심신을 비관하며 살던 헤밍웨이는 절망적인 처지와 피폐해진 정신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1961년 장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헤밍웨이가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1933년에 썼던 소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고 오지였던 킬리만자로산의 만년설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얼어 죽은 표범을 보고서 자신의 처지처럼 느꼈고, 자신의 힘들었던 삶을 표범의 삶 속에 투사시켜 쓴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눈 속의 표범의 모습에서 원초적인 인간의 고독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빛나는 불꽃처럼 후회 없이 살고 싶다’고 부르는 노래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공감이 느껴진다. 모닥불의 연기처럼 사라지는 불꽃은 생명과 희망에 대한 회한(悔恨)이 담겨있었을까? 아니면 인생은 어차피 외롭게 죽어간 표범과 같다는 고독의 표현이었을까? 날마다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려는 인생들도 어차피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노랫말 가운데 ‘아름다운 건 사랑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잠시 눈길이 멈추어진다. 인생을 달관한 자의 면모를 엿보는 것 같다. 어차피 우리 인생도 바람처럼 왔다가 흔적도 바람처럼 조용히 사라질 뿐인 것처럼 표범은 그냥 거기 누워있을 뿐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1926년 7월 탕가니카(탄자니아)의 농업부에서 근무하던 라탐 박사(Dr. Latham)가 킬리만자로의 산 정상에서 얼어 죽은 표범을 우연히 발견했고 한 선교사가 사진 찍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죽은 표범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은 기념 삼아서 꼬리와 귓등을 가져갔고 시간이 흐르자 아예 표범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표범이 죽어서 누워있던 자리는 레오파드 포인트(Leopard point)라고 불리고 있을 뿐이다.

원래 표범이 서식하는 높이는 눈표범이라도 3,000~5,000 높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해발 약 6,000미터(5,895m)로 기록된 킬리만자로산 정상까지 표범이 올라간 사례를 확인한 바는 없다. 다만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을 마사이족들은 신이 사는 집, ‘느가이·느가이’라고 부르고 탄자니아의 언어로는 ‘빛나는 산’이라는 뜻의 신비하고도 성스러운 산으로 여긴다.

글의 끄트머리쯤에 이런 글을 옮겨보는 마음을 이해해주려나. 노랫말을 음미하다가 얻어진 또 다른 인생의 여흥이라고 말이다.

그냥 묻지 마세요.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한 이유는 하나뿐이랍니다.
왜냐고도 묻지 마세요.
표범처럼 멋진 삶을 살고 싶어요.
그게 멋진 인생이니까요.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