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는 열지 말라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더니 그 속에서 온갖 재앙과 불행이 뛰쳐나와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여성이다. 제우스가 인간세계로 내려보낸 판도라에게는 본래 이름이 없었다. 〈일과 날들〉이라는 서사시에 나오는 모든(pan) 선물(dora)에서 따와 이름을 Pandora, 즉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고 짓게 되었다.

올림푸스 12신으로부터 각각의 능력을 부여받은 판도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호기심에 상자를 열고 만다. 그 순간 전쟁, 질병, 슬픔, 재앙 등 악의 근원들이 인간 세상에 퍼져나갔다. 호기심 때문에 열었던 상자를 서둘러 닫았기에 상자 안에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이 사건은 판도라에게 후회라는 시련이 되었다. 이후로 ‘판도라의 상자’는 인류의 불행과 희망을 알리는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비상한 재주를 가진 해커 줄리언 어산지(Julian Paul Assange)가 2010년, 전 세계 270개국의 해외공간과 미국국무부가 주고받은 외교 전문 25만 건을 공개한 사건이 있었다.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고스란히 유출된 비밀문서들은 마치 열린 판도라의 상자처럼 세계를 뒤흔들었다. 당시에 관련된 한국 정보도 1,980건에 달했다. 2007년 대선 당시 관련 정보도 480건에 달했다.

그러나 어산지는 2024년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서방의 전쟁범죄를 폭로함으로써 평화에 기여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 안에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처럼, 일련의 사태를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올해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가히 ‘선거의 해’라 할 수 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통합과 희망을 지향해야 하지만, 자칫 혐오와 차별이 월등해질 수도 있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딥페이크(deepfake) 기술까지 등장하여 조작과 왜곡이라는 재앙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한 영상 기술, 또는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짜 이미지, 가짜 오디오, 가짜 비디오를 뜻한다.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증오와 혐오는 딥페이크 기술과 맞닿아 손쉽게 확산될 수 있다.

최근 허위 정보 유통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에 딥페이크 영상까지 가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취재기자의 발언, 자료만을 체크할 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동영상도 체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아는 매체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허위 정보, 딥페이크에 노출됨으로써 받는 피해와 악영향은 결국 판도라의 상자처럼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뚜껑이 열리기 전인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미노 탈당과 제3지대 합류로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격랑의 시간이 될 전망이 크다.

앞서 말했듯 정치는 통합과 소통을 통해 희망을 지향해야 한다. 자칫 혐오와 차별 속의 수렁에 빠질 수 있는 만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불행을 막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당이나 정권은 그 권리를 유지할 수 없다. 이는 정치적 역학 관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으로서 앞뒤를 잘 살펴 권리를 행사하자. 그러면 투표함이라는 상자에 들어간 한 장의 표가 거대한 희망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