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은 1981년에 발표된 광주 출신 곽재구 시인의 등단 시 ‘사평역에서’에 나오는 타이틀(Title) 지명이다. 뛰어난 감성으로 80년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시는 어느덧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해졌고, 노래로까지 제작되어 널리 대중화됐다.

지금은 추억으로만 남은 옛 남광주역사가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며, 시인이 경전선 열차를 타고 남평역과 화순역 사이를 지나면서 이 사평역이란 이름을 창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화순군 사평면과는 관련이 없다.

당시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던 우리 남도의 풍광과 정취들은 이제 대부분 ‘개발과 성장’이라는 신화에 밀려 자취를 감추거나 시들어 간다. 대략 남아있는 거라곤 경전선(광주~삼량진) 열차가 지나는 송정리에서 순천을 잇는 철로 구간 정도이다.

화순역 모습.

농촌의 몰락과 함께 경전선 열차역은 하나둘씩 없어졌다. 화순군에서만 총 6개 중 이미 3개가 사라졌고 남은 3개(화순, 능주, 이양)중 1곳(이양)은 무인역으로 근무자가 없다. 남은 2개 중 1곳(능주)은 주중근무로 1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인 이하이며, 화순역 또한 1일 평균 이용 인원이 40명 내외라고 한다(철도공사 관계자). 타지역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 현재 손에 꼽을 정도의 역만이 간신히 살아남아 힘겹게 남도의 옛 정취를 이어간다.

도시화된 지역에서 속도가 느리고 소음이 심한 옛 교통수단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농촌지역까지 도시의 속도문화가 강요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오히려 이것은 농촌의 붕괴와 소멸을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도시가 도시다워야 하듯 농촌 또한 농촌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 농촌지역의 삶의 속도에 걸맞는 교통수단이 온존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야 후대가 농촌공동체에 기반한 안정화된 문명 속에서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

사평역(경전선역)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 꼭 지켜져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고속철도나 전철 유치에만 관심을 쏟았지 농촌지역 철도망인 경전선 보존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제 우리의 ‘오래된 미래’를 지키는 일은 온전히 우리 시민사회의 몫으로 남았다.

<기고 : 조보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