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문학론, 문화권력으로 군림
친일작가들의 모습에서 뒤틀린 한국현대사의 흐름 본다
해방76년, 임종국 선생, 친일잔재 핏빛 일갈
화순저널입력 : 2021. 08. 16(월) 13:12
1938년 7월 8일, 총독 미나미 지로가 민의를 듣는 제 11회 면담에서 녹기연맹의 현영섭이라는 자는 다음과 같이 발언하며 조선과 일본이 하나가 되는 내선일체를 위하여 조선어 사용을 전폐하고 조선 사람이 모두 일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한다.

“세계를 통일한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오래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나 한 번도 실현된 일은 없다. 이러한 세계적인 이상을 생각할 때 내선 일체의 문제는 극히 적다. 그러나 조선인이 완전한 일본인이 되기 위하여는 무의식적 융합인 즉 완전한 내선일원화에서부터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인즉 종래에 체험치 않은 신도神道를 통하여 조선어 사용 전폐에 의하지 않으면 안 될 줄 안다.”

1941년 7월 5일, 이른바 ‘지나사변’(중일전쟁) 4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조선문인협회는 내선일체의 감격과 자신들의 충성의 각오와 결의를 담아 성명서를 발표한다.

“우리들 국민은 국가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훌륭한 일본국에 출생한 자랑과 함께 건전한 총후생활의 역군이 될 일을 충심으로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도에서는 교육령의 개정 지원병제도 실시 창씨제도 등이 실시되었다. 이것은 내선일체의 고마운 표현인 것이다. 이 획기적 역사적 감격의 사실과 함께 완전히 황국신민으로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도인은 폐하의 적자가 되며 따라서 명예 있는 황군으로서 충의를 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서 반도인은 당당한 일본인인 것이다. 용맹한 일본인, 정의에 불타는 일본인인 것이다. 낡은 조선인의 껍질을 벗어 버리고 大和魂대화혼에 사는 일본인인 것이다.”

1942년 3월 4일, 노천명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 신보』에 「부인 근로대」라는 눈물겨운(?) 시를 발표하여 조선 젊은이들의 자기 의지와 무관했던 불행하고도 허무한 죽음을 찬양하고 여성들에게도 일제를 위한 지극한 정성을 독려한다.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

군복을 지으러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

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

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땀 두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 이여

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山만한 군복위에 꽃처럼 피었네

위에 언급한 친일 군상의 자기 부정의 실태는 임종국 선생이 지은 <친일 문학론>이라는 책에 실린 지극히 일부의 내용이다. 1965년 굴욕적인 한일 협정이 체결되자 지은이는 일본의 재침탈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일제침략사와 친일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였다고 한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1966년 출간된 <친일문학론>이다. <친일문학론>은 77년에 중판이 그리고 2013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치밀한 고증과 주해를 거쳐 교주본 <친일 문학론>을 출간하였다.

<친일 문학론>은 모두 6개의 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었다. Ⅰ장은 서론으로 친일 친일문학이라는 어휘의 의미와 책의 목적과 성격을 밝힌다. Ⅱ장은 친일문학이 등장한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고찰한다. Ⅲ장은 문화기구론으로 일제 강점기의 정기간행물과 그 간행물을 이용한 언어문화 침탈과 문화계의 동향과 포상제를 살핀다. Ⅳ장은 일제에 동조했던 문화단체 및 그 단체들의 친일 활동과 그 구성원들을 밝힌다. Ⅴ장은 친일작가와 작품과 그 내용들을 소개한다. 슬프게도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우리에게 친숙했던 작가들을 거의 망라한다. Ⅵ장은 친일문학 혹은 국민문학에 대한 개념과 평가와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간단히 논한다. 부록은 관계 작품 연표, 인명해설, 저자연표, 보론 등을 실었다.

<친일문학론>은 한국문학사의 은폐된 단면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여전히 문화 권력으로 군림하며 독재정권과 영합했던 친일작가들의 모습에서 왜곡되고 뒤틀린 한국현대사의 흐름을 본다.

올해로 광복 76주년을 맞는다. 해방 7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독립을 이루었을까? 한반도는 여전히 민족사적 ·세계사적 모순이 중첩된 분단 상태에 있고 대규모의 무역 적자는 여전하며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 거침없이 횡행한다. 또한 요즘에는 이른바 ‘토착왜구’의 발호가 넘쳐난다.

인조반정 이후 실질적으로 조선을 지배한 세력은 노론이었다. 노론 세력은 ‘海東乾坤 尊周大義’ (조선의 하늘과 땅은 주나라 대의를 받든다. 공자가 흠모한 나라는 周이다. 노론에게 주는 곧 明이었다.)를 되뇌며 시대착오적인 사대를 일삼으면서 국정을 농단하다가 조선을 결국 망국으로 몰아갔다. 일제가 득세하자 박쥐처럼 돌변한 노론세력은 고종을 대공(大公)으로 격하할 것을 일본에 요청하면서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병합이라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이다” “조선국민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서 그 위치를 향상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고 주장하며 기꺼이 일본의 주구(走狗)가 되기를 서슴지 않았다. 일제의 강점에 적극 협력한 민족 반역의 대가로 그들은 작위와 은사금 받고 일신의 영달을 꾀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 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일제는 그해 10월 7일 조선인 76명에게 작위와 은사금을 내렸는데 소속당파가 확인되는 자가 64명 정도라고 한다. 그 중 북인이 2명 소론이 6명이고 노론이 무려 56명에 달했다. 이들은 해방 후에도 '민족정기의 심판'을 받기는커녕 단 한 명도 처벌 받은 자가 없었다. 재빨리 반공과 친미로 낯바닥의 빛깔을 바꾸고 생존하여 오늘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를 속속들이 지배하는 기득권세력으로 남아 있다.

한국 현대사의 모습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단 4년의 독일 지배에도 철저하게 친나치 협력자를 처단했던 프랑스와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프랑스인들은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 공화국은 절대로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레지스탕스가 주도하는 시민재판부에서 즉석재판에 따른 총살형이 1만여 명, 국가재판에서 사형선고가 6763명 그중 사형집행 767명, 종신형과 징역형은 4만 명 이상 ,이외에도 반역자들의 재산몰수, 공민권박탈, 사회활동제한, 공무원 22000∼28000명 행정숙청으로 해임 또는 파면, 친나치 기업 간부들의 재산몰수 그리고 기업체의 폐업 및 국유화 등 단호한 조치를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나치에 협력한 언론인과 작가들은 말과 글로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훼손한 죄로 제일 먼저 대부분 사형이나 종신형에 처해졌고 538개의 언론사가 재판에 회부돼 이중 115개사가 유죄선고를 받아 폐쇄됐으며 나머지도 전 재산 또는 일부재산 몰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이마저도 노르웨이, 벨기에, 덴마크 등 인근 유럽 국가들로부터 불철저한 심판이라고 비난받았다니, 우리로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일랜드는 300년 만에 압박을 벗었고 유대 민족은 2천년을 나라 없이 떠돌아다녔으나, 그들은 민족의 전통을 상실하지 않았다. 우리가 불과 35년으로 이 지경까지 타락했었다는 것은 단순히 친일자들의 수치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민족 전체의 수치로서, 맹성은 물론 환골탈태의 결사적 고행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청산이 아니라 오히려 온존된 일제의 잔재는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민족의 정기를 좀먹었고, 민족의 가치관을 학살하였다. 이 흙탕물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민족의 자주는 공염불이요, 따라서 민족의 통일도 백일몽이다.”

해방 76년을 맞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는 임종국 선생의 핏빛 일갈이다.

<김다록 자유기고가>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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