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인생
화순저널입력 : 2021. 07. 21(수) 20:15
황순원 <소나기>
1953년에 발표됐던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우연히 다시 읽게 됐다.
소나기의 내용은 다 알다시피 순박한 소년, 소녀의 첫사랑 같은 이야기다. 소년과 소녀가 나들이 갔다가 소나기를 갑자기 만나게 되자 급히 원두막으로 비를 피했다. 비가 그치자 돌아오려고 보니 냇물이 불어나 건널 수가 없었다. 소년은 소녀를 업고 도랑을 건넜다. 그날 이후 비를 맞았던 소녀가 아프더니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소년이 듣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춘기의 소년과 소녀의 슬픈 첫사랑의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잘 그린 단편소설이다.

사람의 운명은 출생, 성장, 죽음의 순으로 명(命)를 다하면 저승으로 간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비극적인 한 여인의 운명은 김유정의 ‘소낙비’에서 읽어볼 수가 있다.

우리네 인생도 소낙비가 내리고 천둥치듯하다가 어느샌가 비가 멈추듯이 사라져서 저승으로 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생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했나 보다...

오래전 한여름, 소나기가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한 친구의 부름으로 녀석의 단골식당에서 그 친구와 만나게 됐다. 친구는 공부를 잘해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엄친아였다. 게다가 돈 많은 부모 아래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한마디로 말해 금수저였다.

친구는 자신의 병원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미국 유학 중인 아들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안하무인격인 친구의 태도에서 인생은 소나기와 같은, 일장춘몽의 허구의 삶인 줄 모르고 친구가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술을 몇 잔 마셔대더니 그 친구는 대뜸 “운명이란 게 있냐?”며 평소 습관대로 이마를 찡그리고 무뚝뚝한 경상도 말투로 화두처럼 물었다.

그의 부모님은 젊은 날,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품삯 받는 일로 겨우겨우 살았었고 힘들게 늦게 그 친구를 낳았다. 그를 낳자마자 그의 부모는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을 했다. 아이를 등에 업고 아파트 붐의 줄서기로 시작하여 종이딱지 장사까지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돈이 모이자 땅장사와 투기의 대열에 끼어들었고 미친 듯이 돈을 모았다.

‘부자는 부자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서로가 돈 될 만한 정보를 나눠 공유하고 공생공존하면서 돈을 수중에 넣었다. 10여 년이 흐르자 그의 부모는 떵떵거릴 정도로 부자가 됐고 남들에게 자신들을 과시하면서 살 정도가 됐다.

원래부터 권력이나 돈을 쥔 자들은 자신의 권력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돈을 맹목적으로 쫓아가게 마련이다. 반면 소중한 자신의 운명에 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자신감에 넘쳐서 무한한 행복 속에 빠진다. 그리고 남은 꼬리같이 작은 운세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날 나는 친구에게 세상 사는 법을 나름 설명해줬다. 탑도 너무 많이 쌓으면 무너지는 법. 자칫 큰 화를 불러온다고 설명하고 부모에게 남들과 공존하도록 나눠주며 사는 게 좋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후 다시 그를 만났다. 그의 모친은 아파트 대단지를 조성하는 땅을 샀다가 사기꾼들에 걸려 돈을 날리고 함께 투자를 했던 사람들로부터 고소까지 당했다고 했다. 또 그의 부친은 도박혐의로 수배당해 도피 중이었다.

한마디로 집안이 풍비박산된 셈이었다. 세상은 이렇다. 영어 속담에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Easy come, easy go)’고 했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성공하는 것도 서둘러 오는 것보다 차라리 늦게 오는 것이 나은 편이다. 빨리 모아서 잘살겠다는 욕심은 고치는 게 좋다.

LH투기도 그렇고 자신을 속이고 권력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순리대로 살면 어둠의 상황도 풀리는 게 세상 이치다. 눈앞의 권력과 돈 앞에서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게 큰 병이다.

소나기 인생! 준비 없이 소나기를 맞은 아이들과 돈 앞에서 허물어진 소낙비 속의 여자 주인공처럼 준비를 미처 못 하거나 마음이 허물어지는 자에게 운명은 예고 없이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와도 같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도 몇 달 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소설 ‘소나기’ 속에서 소나기를 맞고 난 후 죽은 소녀의 소식을 듣는 소년의 심정 같아서 소나기가 오는 날이면 이 세상에 없는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문장주의원 원장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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