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 하면 영광을 떠올릴 정도로, 영광에는 ‘굴비의 고향’이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법성포 굴비라고 해야 맞다. 영광굴비의 대부분이 법성포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매년 봄과 여름 사이에 법성포 일대의 파시평(波市坪)에서 나는데, 조기 어장은 칠산 바다이다.

칠산(칠뫼)바다는 7개의 작은 섬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예전에는 조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배가 지나갈 때 배 위로 뛰어오르는 조기만으로도 만선이 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면 ‘돈 실으러 가자, 돈 실으러 가자. 칠산바다에 돈 실으러 가자.’라는 뱃노래가 있을 정도로 조기가 많이 잡혔다. 뿐만아니라 법성포에 파시(波市)가 형성되면 나라 안의 작부들이 다 모이고,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물론 돈은 조기를 말한다.

조기는 원래 제주도와 중국 상해의 중간인 동중국해의 따뜻한 바다에서 겨울잠을 자다가, 4월이 되면 법성포의 칠산바다로 올라오며 산란을 시작해 5월이면 연평도, 6월이면 압록강 대화도 근처까지 올라가 요동 반도를 거친다. 산란이 끝나면 다시 동중국해 쪽으로 내려가는데, 이 조기떼를 쫓아가면 어항포구마다 어선들이 몰리는 파시가 형성됐다.

법성포의 굴비가 유명해진 또다른 이유는 독특한 염장법에 있다. 1년 넘게 보관하며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조기를 염장하는데, 이를 ‘섶장’이라고 하며 외지인에게는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 방법은 소금물에 담갔다가 말리는 타 지역의 ‘물굴비’와는 다르다. 또한 법성포의 기후 조건도 한 몫 한다. 봄, 여름 사이 법성포의 일조량과 습도가 특징적으로 적당한데, 소위 ‘굴비바람’이라 불리기도 하는,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서풍이 여름철까지도 불어 좋은 조건을 이룬다고 한다.

83세까지 장수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의 영조는 항상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렸는데, 승정원 일기에 수록된 기록에 의하면 ‘닭고기는 기름지고 느끼해 먹지를 못해서 조기를 올렸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세였으니, 영조는 조기 때문에 장수했을지도 모른다. 조기(助氣)는 이름 그대로, 기운을 북돋우는 생선이라는 말이 걸맞을지도 모른다.

최근 굴비의 수요는 많고 공급은 줄어들다 보니, 조기와 생김새가 비슷한 금빛의 부세를 가공해 판매하는 실정이다. 값도 싸고, 맛은 떨어지는 부세가 참조기를 대신해가는 풍조다. 한 영광굴비 사업단장은 “굴비의 원재료인 조기의 가격이 너무 비싸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고, 현 추세로 가면 더 이상 국내산 참조기는 설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2005년부터 해양수산과학원에서 참조기 양식을 시작하기도 했다. 양식사업 육성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다. 양식 참조기는 자연산의 10% 정도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니. 양식의 활성화는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한편 조기와 관련된 전설로는 조선 후기 명장이었던 임경업(1594~1646) 장군의 일화가 있다. 임경업 장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와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출병했다가 식량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상륙했고, 병사들에게 가시나무를 꺾어 얕은 해안에 꽂도록 명령했다.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자 수많은 조기가 가시에 꽂혀 있었다. 이후로 연평도 사람들은 임경업 장군을 조기의 신으로 모셨다는 이야기다.

‘굴비’라는 이름의 유래는 조기를 짚으로 엮어 말릴 때 매달린 굴비 몸체가 구부러진 모양에서 ‘구비(仇非)조기’라 부르던 것이 굴비로 변했다는 일설이 있다. 구비(仇非)는 우리말로 산굽이, 강굽이와 같이 구부러진 모양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또 다른 가설로는 고려시대 영광으로 유배됐던 이자겸이 왕에게 염장 조기를 진상하며, ‘선물은 보내도 비굴하지 않다.’라는 뜻으로 굴비(屈非)라 적어서 보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도 비굴하지 않도록 스스로 몸을 구부려 낮추는 구비(仇非)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낮은 자세로 바라보며 화순의 특산물로 내세울 만한 것을 찾아야 할 때다.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