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앉아 우두커니 밀려오는 파도를 봅니다. 파도는 부단히 내 앞으로 밀려오고, 곧이어 새로운 파도가 뒤를 따르고. 부서지고, 또 만들어지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바람입니다.

바닷물은 공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모멘텀(Momentum, 탄력, 가속도, 운동량)을 지닙니다. 이러한 바닷물 위로 바람이 불면 처음에는 꼼짝도 하지 않지요.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바람의 에너지가 무한대로 계속된다면 파도 또한 계속 불어납니다.

그렇다면 파도는 왜 저런 모양으로 부서질까요? 파도는 에너지를 지니고서 계속 자신의 몸을 키워가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파도 그 자신인 ‘큰 바닷물’의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파도의 끝단은 과도한 에너지로 말미암아 그만 목이 꺾이고, 다시 무한한 바다로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세상일이 다 그렇습니다. 비슷하면 모이고, 모이면 헤어지고. 몸집이 커지면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지는 이합집산의 원리이지요. 간신히 태어나 폭풍처럼 성장하고, 하늘을 찌를 듯 큰소리치다가 이윽고 소산하여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유체역학이나 고체역학을 연구하는 기계공학도, 재료공학 전공에 아주 필요한 이론이기도 하지만, 예술에도 필요한 이론입니다. 파도는 수많은 사진가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문양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COEX에서 열린 세계 미술 전시회에서 모 작가에게 구태여 이 이론을 설명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작가는 멋진 모양만을 중시했거든요. 오히려 ‘왜 남의 일에 끼어드느냐.’, ‘당신이 예술이 뭔지를 아느냐.’는 식의 창피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과학과 예술은 하늘을 나는 새의 양 날개와 같습니다. 새의 날갯짓이 공기를 밀어내 작은 바람이 되고, 점점 커져 큰 파도를 일으킬 것을 상기하면 무한히 반복되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그리 두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정기
도곡면 천암리 출생
화순저널 고문
공학박사
현 만안연구소 소장, (사)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