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곡정사의 매화가 봄을 맞이해 만개했다. 연못과 함께 자리한 나무는 그 꽃도 남다르지만, 그 수형이 와룡을 닮아 죽곡와룡매라 불린다고 한다. 죽곡와룡매는 해마다 성글지만 고운 자태로 단아하게 꽃을 피운다. 차갑고 혹독한 시절을 지나면서도 변치 않고 해마다 피어나 자신의 존재를 지켜온 와룡매는 마치 죽곡정사를 창건한 회봉 안규용 선생의 생애와 뜻을 닮았다.

죽곡정사 내부. 회봉 안규용 선생과 그 제자들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호남의 대유학자인 회봉 안규용(1879~1959) 선생은 사람들에게 ‘죽곡선생(竹谷先生)’이라 불렸다. 동문들이 모두 과거시험을 위해 문장공부를 읽었지만, 회봉은 홀로 오동나무 아래 죽상(竹床)을 두고 성리학에 열중했다.

회봉은 선비를 인간 본유의 도덕적 본성과 인의정신을 발현하여 인간사회에 선의지(善意志)를 천명하려고 노력하는 존재로 이해했다.

죽곡정사 전경. 회봉 안규용 선생은 죽곡정사에서 문호를 널리 개방해 문하생을 배출했다.

이러한 선비 의식은 불의에 항거하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차라리 머리 없는 귀신이 될지언정 머리털 없는 사람이 되겠는가.”라며 조정의 단발령을 강력히 비판하고, 죽곡정사를 창건해 남도의 많은 문하생들을 엄격하게 교육하며 일본의 황국신민, 내선일체의 강령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죽곡정사의 처마.

죽곡정사는 여느 서당과는 다른 역할과 기능을 담당했다. 학술사적 측면으로는 율곡이이의 뒤를 잇는 기호유학의 일맥을 담당했다. 안규용 선생은 죽곡정사 창건 이후 곧바로 정기적 강회를 개최하여 기리의 선명한 분별을 강조했다.

역사적 측면으로는 항일운동을 전개하여 국권회복에 앞장섰던 의병들의 기록을 정리했다. 안규용 선생은 문필로 왜정에 저항하고 학문을 통해 무력 침탈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죽곡정사 입구에 있는 맑디맑은 계곡

교육적 측면으로는 선비정신을 강렬히 진작하여 200여 명에 달하는 문하생을 배출했다. 신분을 막론하고 배움에 뜻이 있는 자에게 문호를 널리 개방했으며, 특히 호남지역의 문하생에게 올바른 학문방법과 투철한 예법정신을 주지시켰다.

문화적 측면으로는 지역사회의 출판문화를 담당했다. 1,600권이 넘는 전적을 소장했으며, 향촌사회에서 일종의 도서관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