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백범 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中 인용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쓴 ‘나의 소원’에서 장래 해방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국가의 목표로 높은 문화력을 제시했다. 식민지 시대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 지도자인 김구 선생은 왜 경제적 부국이나 군사 강국이 아닌 선진문화국가를 독립 국가의 최종 목표로 삼았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류상의 그 어느 강력한 제국도 경제나 군사적인 힘만으로 나라를 다스리지는 못했다는 사실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김구 선생은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력을 기반으로 한 ‘관용 정신’이야말로 국가의 번영을 가능케 한 힘의 원천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K-컬쳐로 알려진 세계 속의 문화강국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중앙정부는 물론 각 지방 자치 단체마다 문화예술을 위해 다양한 사업과 예산을 투자하며 각종 문화 콘텐츠 개발과 관광자원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데 예산을 투자하고 문화관광재단을 설립하는 등의 노력만큼 성과를 내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는 썩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왜일까? 필자는 이와 같은 문제가 ‘문화예술이 곧 돈이 되어야 한다’는 문화상업주의적 사고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문화예술은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한 마디로 단언해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편의상 예술적 창의성과 작품성을 지향하는 순수 창작 예술과, 시장에서 선호하는 구매력이 우선인 상업예술로 나누어 보겠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이 반드시 서로 배치되거나 대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길항하는 측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문화예술이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상품으로서의 기능이 커지고, 이에 부응하는 예술가들의 통속적인 욕구가 강해질수록 예술 활동은 활발해지는 동시에 저속화 될 위험성도 커진다. 많이 팔리고 돈이 되는 것이 곧 훌륭하거나 우월한 예술이라는 인식이 만연해질 때, 인간의 고상한 창의성은 왜곡될 소지가 많아진다. 이런 풍토 속에서 순수 창작 예술이 살아남기는 어렵다.

최근 각 시·군마다 조직 개편을 통해 독립적인 문화예술재단 또는 문화관광재단을 설립하고 있다. 과거 문화예술을 정권의 통치를 위한 홍보 수단쯤으로 여기며 문화공보실을 두었던 시대를 상기해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관치에서 벗어나 사업과 예산의 운용이 더욱 자유로워질 때 진정한 문화예술이 꽃필 수 있다는 인식의 결과일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조직개편을 통해 체제를 정비하고 문화행정 2.0 시대를 맞은 데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하지만 조직개편을 통해 하드웨어가 바뀐 것에 비해 문화예술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의 문제, 예산의 뒷받침, 문화콘텐츠의 개발과 운영에 대한 인식도 동시에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창작 예술이나 공연 예술 등 기초예술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과감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에서 소외된 순수예술영역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존재해야 그 열매가 자라 문화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과거 우리 지역의 청소년관악단이 정치적 갈등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며 반성할 일이다. 어떤 문화예술이 꽃피고 열매를 맺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모든 문화예술은 돈벌이라는 인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화예술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고 이윤을 창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어 가꾸기도 전에 열매를 따 먹겠다는 발상은 문화예술의 적이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래 각 지역마다 축제가 열리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심화 됐다. 단체장 임기 중 4년 또는 8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지역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유한 문화적 주제를 통해 차별화 된 문화콘텐츠 개발을 고민할 때다. 또한 지역 주민들의 합의 하에 지속적으로 이를 유지하고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시대 감각이 필요하다. 한국은 속도전 사회다. 유럽의 300년을 30년 만에 극복했다는 자부심의 나라다. 하지만 이러한 자부심의 이면에는 만성적인 불안과 조급증이 존재하고, 극복해야 할 정신적 콤플렉스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지만 유구한 역사와 독창적인 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미 우리는 세계적인 문화강국이다. 더 이상 강대국 콤플렉스에 빠져 더 크게, 더 높이,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특히 지역 문화유산의 정비에 있어서도, 얼을 살리는 현창 사업에 중심을 둘 것인지, 관광자원으로써 수익 창출을 위한 투자에 집중해야 할지 판단하는 분별력 또한 필요하다.

문화예술이나 지역의 문화유산이 관광의 소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반드시 돈이 되어야 훌륭한 문화예술인 것은 아니다. 시대적 트렌드의 변화에 따라 모든 문화유산이나 유적지가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돈이 되는 예술 행위만을 추구하며 축제나 문화유산을 정비하는 문화상업주의적 사고에서 탈출해야 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천민자본주의적 인식을 극복할 때, 품격있는 지역문화의 창조가 가능할 것이다.

김구 선생이 역설한 문화국가는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나라의 최종 목표다. 중앙정부도, 지역 자치단체도, 이제는 문화예술의 진흥과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 시대의 변화에 걸맞는 인식을 갖추고 세련된 사업방식을 고민할 때다.

문행주
전 전남도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