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마지막 날 길 떠날 채비를 하는 까만 토끼와 이별주를 나누었다. 육십 년 후 만남을 기약할 수 없어 이별이 안타까웠다. 파란 용과 함께 힘차게 나아가라는 위로를 남기고 떠났다.

2024년은 갑진(甲辰)년이다. 창공(蒼空)으로 비상(飛上)하는 청룡(靑龍)의 해다. 붉은 기운 자욱한 동녘 하늘을 날아오르는 푸른 용을 희망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되는 이때 관심이 가는 것이 있다. 계묘, 갑진, 임진, 정유 같은. 그리고 파란 용이니 검은 토끼니 하는 색깔들도.

연말 극장가는 단연 ‘노량 : 죽음의 바다’다. 서기 1592년에 일본이 조선을 침범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른다. 그 해가 임진년(壬辰年)이어서 그렇다. 5년 후인 1597년에 재차 침범했다. 정유년(丁酉年)의 일이어서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부른다. 다음 해인 1598년 7년 전쟁이 끝나고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였다. 무술년(戊戌年)이었다.

'계묘', '갑진' 이런 것들을 육십간지(六十干支) 또는 육갑(六甲)이라고도 부른다. 총 60개인데,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로 이루어진다.

천간(天干)은 과거 날짜나 달, 연도를 셀 때 사용했던 단어의 총칭이다. '십간'(十干)으로도 부른다. 중국 고대 상나라 사람들은 천계에 10가지 태양이 있고, 하루에 하나씩 차례대로 뜨고 져서 총 10일 주기를 이룬다고 믿었다. 천간은 이 태양들에게 붙였던 이름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십이지(十二支)는 하루를 나누는 시간 단위다. 지금과 달리 12시간으로 나누었다. 자시는 밤 11시부터 1시까지다. 2시간씩 나아가면, 오시는 낮 11시부터 1시까지다.

십간은 보통 십이지와 함께 사용된다. 둘을 순서대로 합하여 천간지지, 또는 간지라고 부른다. 이것이 총 60개이기 때문에 육십갑자라고 한다.

십간(十干)은 갑(甲) 을(乙) / 병(丙) 정(丁) / 무(戊) 기(己) / 경(庚) 신(辛) / 임(壬) 계(癸)다. 십이지(十二支)는 해(亥 돼지) 자(子 쥐), 축(丑 소) /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이다.

​십간과 십이지를 차례로 결합한다. 십간의 첫 번째인 '갑'과 십이지의 첫 번째인 '자'를 합하면 '갑자'가 된다. 각각의 두 번째인 '을'과 '축'을 결합하면 '을축'이다. 순서에 따라 하나씩 붙여 나가다 보면 60개가 되면서 다시 '갑자'다. '회갑(回甲)'이라 한다. 무한 반복이다. 예전에 나이 60을 먹으면 회갑잔치를 하였다. 육십간지로 연(年), 월(月), 일(日), 시(時)를 다 헤아렸다.

양력으로 ‘2024년 1월 1일 새벽 1시’에 태어난 아이라면, 음력으로는 '2023년 11월 20일 축시생'이다. 연, 월, 일, 시를 여덟 자로 나타낸 것이 사주팔자(四柱八字)다. 이 아이의 사주팔자는, 계묘(癸卯)년 갑자(甲子)월 갑자(甲子)일 을축(乙丑)시다. 인터넷 덕에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다. 네이버에서 '만세력(萬歲曆)'을 검색하여 대입만 하면 된다.

tengyart, 출처=Unsplash

이제 색깔을 알아보자.

유교(儒敎)는 음양(陰陽)과 오행(五行 ; 목화토금수)이라는 기호를 통해 세상을 해석했다. 음양오행은 사주를 보고, 점을 치고, 묫자리를 정하고, 궁합을 보고, 왕의 합방 날짜를 고르고, 길일을 선택하는 등 널리 사용되었다.

오행에는 각각의 색이 있어 오방색(五方色)이라 부르고 방위도 정했다. 십간과 십이지도 각각의 색과 방위가 있다. 청색(靑色)은 동쪽이고 나무[木]이며 인·묘다. 적색(赤色)은 남쪽이고 불[火]이며 사·오다. 황색(黃色)은 중앙이고 흙[土]이며 축·진·미·술이다. 백색(白色)은 서쪽이고 쇠[金]이며 신·유다. 흑색(黑色)은 북쪽이 물(水)이며 해·자다.

용의 색깔을 구분하는 것이니 십간만 보자. 앞에서 설명할 때 두 개씩 묶었다. ‘갑을’은 동쪽으로 파랑, '병정'은 남쪽으로 빨강, '무기'는 중앙으로 노랑, '경신'은 서쪽으로 하양, '임계'는 북쪽으로 검정이다.

2024년은 ‘갑’진년이라 했겠다. ‘갑’은 동쪽이니 파랗다. 그래서 파란 용이다. 내년을 을사년으로 파란 뱀이고.

예로부터 신년에는 신수를 보고 덕담을 나누었다.

“120년 전인 1904년 파란 용이 비상하지 못했다. 다음 해 일본이라는 땅꾼이 뱀을 잡았다. 을사조약 또는 을사늑약이라 한다.

60년 전인 1964년에도 파란 용은 비상하지 못했다. 다음 해 베트남으로 전쟁을 떠났고, 굴욕이라고 비난 속에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다시 60년 만에 맞이하는 파란 용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니, 40대 이하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의 연령대라면 안타깝지만 마지막 만남이다.

<등용문>이라는 게 있다. 중국 전설에 따르면, 황하 상류에 용문이라는 협곡이 있다. 물살이 어찌나 거센지 크고 힘센 물고기라도 오르기가 힘들었다. 힘든 과정을 거쳐 협곡을 오른 물고기는 용이 되었다고 한다. 출세를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중요한 시험을 가리키기도 한다.

기원드린다.

올해는 선거도 있다. 결과는 어떻게든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나라 일이든, 가정의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개천에서 헤엄치는 이무기보다 창공을 비상하는 푸른 용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