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아직 한여름, 연일 송곳 같은 햇살이 내리꽂힌다. 불가마 속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그럽고 화사한 모습으로 건재함을 과시하는 꽃들이 있다. 능소화, 백일홍, 나무수국 그리고 무궁화가 그들이다. ‘화목(花木)’이라고도 부른다. 꽃이 두드러지는 나무라는 뜻이다. 줄기의 구조가 단단하지 못한 초본(草本)으로는 삼복의 무더위를 이겨낼 수 없어 여름꽃은 대개가 이런 형태다.

목사골 ‘능주의 문’을 통과해 도곡 고인돌 유적지 방향으로 접어들면 무궁화 꽃길이 시작된다. 도곡 농공단지 앞까지 3km 정도 이어진다. 광복절 즈음 출근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무궁화가 손짓하며 인사를 건낼 때, 라디오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다. Z세대(1995∼2009년생) 4명 중 1명은 광복절(8월 15일)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다. 시간의 차이일 뿐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역사의 한 장면처럼 여길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충격이 못내 마음에 남는 건 아마도 차창 밖 무궁화 때문이었으리라.

능주에서 도곡 농공단지로 가는 도로변에 심어진 하얀 잎의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의 나라꽃(國花)이다. 꽃의 이름이 자못 묵직하다. ‘무궁(無窮)’, 다함이 없다니 비장하기까지 하다. 무궁화가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 들어 온 때가 단군조선 시대라 한다. 그래서인지 반만년의 역사를 끈질기게 이어온 한민족의 기상을 상징한다는 주장이 수긍이 가기도 한다.

본래의 이름은 ‘목근화(木槿花)’였다. 발음이 부드럽게 ‘무궁화’로 변했고 뜻이 덧붙여져 ‘無窮花’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란, 작약, 백합, 봉선화처럼 무궁화도 한·중·일이 동일한 한자어 이름을 사용하기에 이 가설을 전적으로 믿기에는 좀 그렇다.

무궁화는 새벽부터 피기 시작해 아침 시간에 만개했다가 오후가 되면 꽃잎을 닫고 떨어진다. 개화기간이 긴 꽃들의 공통적 특징이 그러하듯이 곁가지에서 새로운 꽃눈을 계속 만들어 낸다. 오늘 보는 꽃은 어제의 그 꽃이 아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조선의 선비들은 두 번의 해를 보지 않는다고 하여 향일화(向日花)라 부르고 지조의 상징으로 삼았다. 일제강점기 때 일인들은 하루도 채 못 가는 조개모락(朝開暮落)의 저급한 꽃으로 비하했다.

능주에서 도곡 농공단지로 가는 도로변에 심어진 붉은 잎의 무궁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나라꽃이 정해지는 것은 주로 지배계층의 몫이었다. 하지만 무궁화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민중의 지지를 받아 국가에서 그것을 받아들인 형태이다. 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독립운동 선각자들이 꺼져가는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했던 것이 시발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애국가 후렴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들어가면서 나라꽃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해방 이후 정식으로 국화로 채택됐다.

꾸준한 품종개량으로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개발한 무궁화의 품종은 배달계-단심계-아사달계 3가지로 대별된다. 배달계는 꽃잎은 물론 꽃술까지 순백색이고, 아사달계는 중심부가 크고 꽃잎에도 무늬가 있다. 단심(丹芯)계는 꽃의 중심부가 붉다 하여 그리 불리며 꽃잎색에 따라 백(白)단심 · 적(赤)단심 · 자(紫)단심 · 청(靑)단심으로 구분한다.

전국에 무궁화 명소도 많이 생겼고, 무궁화 축제가 열리는 지자체도 있지만, 서울 궁정동, 청와대 영빈관 서편 분수대 건너편의 무궁화 동산 공원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안기부 궁정동 비밀 안전가옥이 있던 자리다.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술자리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권총에 피격당해서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안가를 헐고 무궁화 단지를 조성했다.

능주에서 도곡 농공단지로 가는 도로변에 심어진 무궁화.

​이런 사연도 있다. 5공 군사정권 시절, 심수봉의 노래 <무궁화>가 금지곡이 되었다. 가사의 내용 중 ‘포기하면 안 된다. 눈물 없이 피지 않는다.’라는 부분이 불온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광복절의 의미는 나이 따라 다를 것이다, 나라꽃 무궁화를 대하는 자세도 같지 않을 것이고,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겠다. 다만 광복절 즈음에 능주에서 도곡을 가면서 나라꽃 무궁화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능주로 들어가는 길 옆에 심어진 무궁화.

수다줌마 최순희 전남문화관광해설사

* 네이버 블로그(sudajumma) ‘화순여행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다.
* 수다줌마는 화순의 역사와 문화, 인물과 산물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