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1980년대 유행했던 최불암 시리즈로 시작해볼까 한다.

최불암이 귀양을 가게 됐는데, 꿈이라 여겼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임금님 침 튀기는 거리에서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몸인데...매일 한양만 바라보았다. 실수였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어명이 내려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왔다. 그런데 사약이라니. 행정착오로 잘못 배달된 게 틀림없다 여겼다. 약사발을 들고 차마 들이키지 못하고 한양 쪽만 쳐다보았다.

그때 들리는 요란한 말발굽 소리, 그러면 그렇지. 사약이 말이 될 법한 일인가. 최불암은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만세라도 부르고 있었다. 기쁘게 절하고 엎드렸다. 교지를 읽는 낭랑한 목소리, 바로 기절했다. “원샷!”

조선시대 역사를 공부할 때 왕을 제외하고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정도전, 조광조, 흥선대원군이다. 앞의 유머는 조광조가 주인공이다. 그의 초분지(初墳地, 최초로 묻힌 장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정암 조광조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일찌감치 장원급제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하다가 추천을 받아 관직에 나갔다. 이후 홍문관을 거쳐 대사헌까지 승승장구했다.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에 오른 중종의 지지를 받아 왕도정치를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뜻이 좋다고 결과까지 아름답지는 않았나 보다. 새로운 인재를 뽑고, 자격이 없는 공신의 공적을 박탈하고, 토지와 노비를 환수하고...기득권을 박탈당한 훈구파가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를 제거하려는 음모와 모함이 진행됐다.

조광조가 유배와서 살았던 적중거가

왕도 그의 직선적이고 급진적인 개혁에 피곤을 느끼고 부담스러워하던 차였는데, 그의 탄핵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1519년 11월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죽고 쫓겨났다. 조광조 역시 동지섣달 엄동설한에 능주로 유배를 오게 된다.

능주에 온 조광조는 관비의 집에 기거한다. 매일 임금을 향해 방문을 열어놓고 절을 하며 언제쯤 나를 불러줄까 기다렸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은 그해 음력 12월, 사약을 받고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학포 양팽손은 조광조보다 6살 적다. 조광조는 진사에, 양팽손은 생원시에 각각 장원으로 급제해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하고 사마시를 통하여 함께 조정에 들어간 절친이었다.

조광조가 유배형을 받을 때 부당함을 고하는 상소를 올려 파직당하게 된다. 고향인 지금의 도곡면 달아실로 내려왔는데, 두 사람은 날이면 날마다 위로하며 유배가 풀리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염원과 달리 왕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금부도사 유엄의 손에 사약을 보냈다. 38년 꿈과 한이 죽었다.

죄인의 시신을 함부로 손댈 수 없음에도 양팽손은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그냥 둘 수 없다며 수습했다. 능주에서 쌍봉사 근처 이양면 증리까지 30리가 넘는다. 자동차로 가도 30분이 걸리는데 추운 겨울날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에 그곳까지 시신을 옮겼다.

꽁꽁 언 땅은 괭이 날도 거부했을 터인데, 눈물로 땅을 파서 시신을 묻었다. 그렇게 조광조 초분지가 만들어졌고, 이듬해 조광조는 경기도 용인 선산으로 이장을 했다. 증리는 초분을 썼던 곳이라 하여 서운태(서원터) 마을이라 불린다. 학포는 이곳에 추모옥을 짓고 춘추로 문인 제자들과 함께 제향했는데, 후일 죽수서원이 된다.

선조 1년(1568) 조광조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다음 해에 문정이란 시호를 받았다. 향교에 동방18현으로 모셔지게 된다. 선조 3년 능성 현령 조시중의 협조로 천일대 옆에 조광조와 양팽손을 제사 지내는 서원을 짓고, 죽수라는 사액을 받았다. 전남 지방에서는 순천 옥천서원에 이어 두 번째 사액서원이다.

학포 선생과 담소를 나누는 장면

용인 조광조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심곡서원이 있다. 조광조와 양팽손의 의리는 죽어서도 계속되어 500년 넘게 한 방에서 제삿밥을 먹는 사이로 남아 있다.

조광조가 사약을 받아 죽은 후 약 150년이 지난 1667년에 능주목사였던 민여로가 조광조가 마지막 한 달을 보낸 자리에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를 세웠다. 조광조의 넋을 위로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조광조의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초분지 인근에는 한말 의병 활동터인 쌍산의소 무기제작소가 있다. 조광조가 용인으로 떠난 후 벼슬에 나가지 않고 머물렀던 학포당도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기묘사화와 관련된 유명한 유적지도 있는데, 바로 적벽이다. 기묘사화 때 최산두가 그 곳에 유배와서 붙인 이름이다.

두루두루 둘러봐도 좋을 것이다.

조광조의 시신을 가매장한 곳(서원동길 : 화순군 이양면 증리 241). 최익현이 쓴 비석.

수다줌마 최순희 전남문화관광해설사

* 네이버 블로그(sudajumma) ‘화순여행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다.
* 수다줌마는 화순의 역사와 문화, 인물과 산물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