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에는 19명의 문화관광해설사가 있다. 운주사, 도곡·춘양 고인돌, 조광조 유배지, 쌍봉사 안내소를 한 달씩 돌아가며 관광 안내를 한다. 올해 들어 첫 번째 근무지는 조광조 유배지다. 앞으로는 능주 들녘 넘어 무등산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뒤로는 비봉산이 감싸 안 듯 자리한 곳이다. 마을 어르신으로부터 비봉산에 얽힌 전설을 들었다.

‘옛날에는 영산강물이 이곳까지 들어와서 비봉산에 각양각색의 새들이 사는 새들의 천국이었다. 그 시절은 능성현이라 불렀는데 부자고을로 이름 높았으며 귀인들도 많이 나왔다. 새들은 영험한 면도 있어 나라에 변란이나 조정에 흉변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요란스럽게 울어댔다. 정암 조광조 선생이 원통하게 사사(賜死)당할 때는 연 삼일을 울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그러나 산 아래 평민들은 새들의 뒤치다꺼리로 편치 않았다.

어느 날, 그 마을에 살던 무지한 한 농부가 새들을 전부 없애버리자 작심하고 아무도 몰래 한밤중에 새들이 잠들어 있는 산에 불을 질렀다. 순식간에 타오른 세찬 불길에 그곳의 새들은 미처 피하지 못한 채 모조리 타 죽고 말았다.

날이 밝자 잿더미만 남은 산 위로 봉황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봉황(鳳凰)새는 수컷봉과 암컷 황을 붙어서 봉황이라 한다. 이미 불에 타 숯검댕이가 된 숫 봉황새 주위를 칠 일간 빙빙 돌며 울더니 그만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순절한 암 봉황새의 넋을 가엽게 여겨 숫 봉황새와 함께 묻어줬다. 이후로 그 산의 이름을 비봉(飛鳳)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옛절터에서 바라본 화순읍과 무등산

비봉산은 화순군 능주면의 야트마한 (256m)산이다. 2024년 1월 15일 조광조 유배지 근무를 마치고 어르신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바로 뒤에 자리한 비봉산을 한번 올라 가 보았다. 등산 코스는 조계종 사찰인 양복사에서 시작하여 절터, 비봉정, 비봉산성, 정상, 능주향교로 내려오는 코스이다. 오늘 양복사 뒤에서 시작해 비로정으로 올라 비봉산성을 지나 절터를 지나서 양복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곳곳에는 해묵은 봉분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고 발아래 낙엽 사이엔 벌써 봄나물 새순들이 푸릇푸릇 얼굴을 내밀고 있다. 햇살 들지 않은 한쪽 음지에는 산짐승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15분 정도 언덕길을 오르니 작은 학교 운동장만한 공터에 아름드리 한 그루의 나무와 둥그런 쉼터가 있다. 화순읍과 능주읍이 한눈에 보였다. 쉼터 끝가지 무성한 오래된 나무가 우뚝 서서 능주 벌판을 굽어보고 있다. 멀리 무등산이 여러 산봉우리를 양옆으로 어깨동무하며 비봉산을 바라보고 있다. 눈을 가까이 돌리니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영벽정, 지석천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이 아스라이 보인다.

그곳에서는 능주 면과 화순 읍과 무등산이 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마침 의자도 있어 잠시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큰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오는데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비봉산성

잠시 숨 고르기를 마친 후 비봉정에 올라 잡힐 듯 가까워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비봉정에서 비봉산성으로 가는 길이 바로 연결돼 있다. 비봉정에서 비봉산성으로 나 있는 길은 온통 시루대가 무리 지어 있는 시루대숲이다. 시루대 길을 지나 내려오니 비봉산성이 보인다.

능주면과 도곡면 경계지점에 해발195.5m높이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이다. 정확한 축조 시기는 문헌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산성의 전체 길이는 925m로 대부분 흔적만 있고 일부 구간만 복원하여 보존되어 있다. 능주에서 가까운 요충지에위치 하고 있어 유사시 방어나 역습 등의 전술을 수행할 수 있는 전형적인 배후산성이라 할 수 있다.

내려오니 벌써 해가 저물었다. 비봉산 아래에는 조선시대 개혁의 아이콘 조광조 유배지, 지석천 근교의 영벽정, 능주목의 정문 죽수절개아문이 있다. 능주에 오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쯤 가 볼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