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의 서쪽, 대표적인 산이 천태산이다. 도암과 청풍에 접해 있지만, 도암에서 볼 때 가장 우뚝하고 가장 멋있다. 도암 사람들이 항상 함께하고, 매일 바라보는 도암의 산이다.

이 산에 대해 최근 어느 게 개천산이고 천태산인지 말이 많다. 네이버와 다음 지도 역시 상반된 위치를 가리키는 등 시선이 다양하다. 천태산과 광덕산 일대까지 통틀어 천태산으로 보는 이도 있고, 명토 박아 하나만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주변 작약산, 명월산, 오리산에 대해서도 분분하다.

사실 명칭의 힘은 강하다. 개명해서 운명을 바꾸려는 이도 있다. 하지만 고유명사는 자의적이니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다만 천태산은 다르다. 천태산은 무등산이나 모후산과 같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대략 20여 군데는 훌쩍 넘게 있는 보통명사이다.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천태산의 천태(天台), 하늘의 별은 무슨 의미일까. 고려시대 사찰 대부분은 천태종의 법화경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천태산 주변 사찰은 모두 천태종이다. 강진 백련사 정면에 있는 산도 천태산, 백련사 역시 천태종이다.

운주사는 묘법연화경을 천불동에 실현한 사찰이다. 천태산은 바로 그 운주사가 천태종을 바탕으로 한 법화경 28품의 공중 법회를 재현해 놓았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표지인 셈이다.

천태산은 천태종을 표방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천태는 무엇일까. 하늘의 별, 곧 천태는 당연히 법화경의 핵심 곧 ‘석가의 공중 법회’ 장면이다. 이를 구체화한 곳이 운주사이다. 운주사에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른 손가락으로 칠보문을 열고 다보불과 자리의 반을 나누어 결가부좌하고 법화경을 설하는 칠보탑, 그곳이 바로 천태이다.

도암면 마을 지명에는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운월리(雲月)는 구름 속의 달이고, 그 달빛이 연못에 비춘 곳이 지월리(池月)이다. 원천(源泉)의 물이 정천리(淨川)를 지나 벽지리(碧池)라는 호수에 모여 도장(道場)을 이루면 사람들은 등불(燈光)을 밝히고 천태(天台)로 향하는, 도암은 하나의 불국토이다. 해망산(解望山) 역시 해탈(解脫)을 간절히 갈망한다는 뜻이며, 달은 부처님의 자비, 도암 중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물은 넉넉한 불심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암의 마을 지명은 이곳이 지상의 불국토(佛國土)임을 암시하는 은밀한 지도인 셈이다.

개천산은 그런 천태종을 개창을 표방하는 산이다. 일종의 천태종을 떠받치는 형상으로 보면 된다.

금강산도 계절에 따라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으로 부른다. 중요한 점은 산보다 산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이다. 어느 산이 천태이고 개천이든 거기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 산이 더 빛난다.

도장리에서 본 천태산

대추 알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천태산 꼭대기의 돌 하나 흙 한 줌이 천태는 아니다. 어느 것이 개천이고 천태든 두 산은 하루를 시작할 때는 물론, 고단한 일을 마친 우리 고향 사람들, 귀갓길을 오늘도 여전히 넉넉히 비춘다.

박용수
수필가
전남일보 신춘문예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
광주일보 수필의 향기 연재 중
광주동신여고 교사로 재직 중
화순문학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