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하는 우리는 허탈하다. 상식은 무너지고, 진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권력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허울을 앞세우고, 주권자인 국민을 농락했다. 국민이 투표로 세운 권력인데도 대의 민주주의를 의심하게 만들고, 민의는 한없이 무력해졌다. 이런 혼돈과 배신의 사슬고리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희망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 해답을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에서 찾고 있는 이들이 있다. 전남 화순에서 일어난 새로운 바람이다. 165년 전 동학이 다시 오고 있다. 그들은 왜 다시 동학에 주목하고 있을까?

화순의 평범한 이웃들이 동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화순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의병과 빨치산, 1946년 화순탄광 사건, 1980년 5월의 동면 무기고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이 보여주었듯이 화순은 외세와 맞서기도 하고 가렴주구와 독재 세력에 맞서 싸운 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또한 화순은 크고 작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땅이다. 조광조의 죽음을 껴안은 목사골 능주, 수려한 적벽, 민초들의 천년 한을 품은 운주사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풍광 덕에 갈 곳이 많은 풍요로운 문화의 땅이 화순이다. 그렇듯 순박하면서도 올곧은 밑바탕이 있기에 그들이 동학을 꺼내 든 것이다.

화순사람들의 공부모임은 동학 연구의 정수를 잇고 있는 원광대학교 박맹수 전 총장이 이끌고 있다. 박 전 총장은 동학 연구의 권위자이자 대한민국의 실천적 지성으로, 첫 강의 ‘왜 지금 동학인가‘로 질문을 열고 이미 여덟 번째 강연을 마쳤다. 강연은 앞으로 두어 차례 더 열린 뒤 난장 토론회로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물론 공부는 강의실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굽이굽이 소용돌이친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면서 동학 공부를 어떻게 실천적으로 승화시킬 것인지도 모색했다. 앞으로 더욱 실사구시적인 활동과 강좌가 그 뒤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진행된 강의는 매회마다 참여자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여 생활 속에 녹아들지 않을까 기대에 찬 마음으로 예측한다. 목차만 보아도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매회 사자후처럼 토해낸 내용 속에 빛을 보지 못했던 동학의 진실을 밝혀낸 박 교수의 열정이 화순 사람들의 횃불을 지펴낸 한 몫을 단단히 해냈다.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성인 화순사람들(협동조합준비모임) 준비위원장은 “가슴 뜨거운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강의가 열리는 날은 일요일인데도 매회 강의실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습니다.”라며 그중 지난 5월 마지막 주에 여덟 번째로 열렸던 강의, “동학은 왜 혁명인가?”가 특히 흥미진진했었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에게 혁명이 요청되는 게 맞는가. 식민통치와 독재정치로 망가진 굴절의 현대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은 혁명인가? 동학에 참가했던 민중들이 외친 제폭구민((除暴救民, 폭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한다)과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처럼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해 망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망상적 거짓말을 넘어 사사로움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징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그 질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던져야 할 물음으로 거듭났다. 동학은 단지 봉기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근본적 사유였다. 서러움에 멈춰 서있지 않고 약자를 일으켜 세우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그리며, 탐욕과 억압이 사라진 평등 세상을 꿈꾼 민중들의 생생한 사상이어서 만인의 가슴을 울렸던 것이다. 어른과 아이, 여성과 남성, 양반과 상민의 갈등이 해체되는 세상, 동학이 외쳤던 그 목표가 오늘날까지도 역동성을 만들고 있는 까닭이다.

다시 동학이 오고 있다. 어깨동무한 사람들이 화순의 들녘과 산자락을 타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협동조합의 깃발을 앞세우고 허탈을 넘는 희망을 일구기 위해 화순 사람들이 깃발을 올렸다.

노영필
교사, 교육평론가, 철학박사
현재 전남일보 ‘교육의 창’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