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은 소방의 날이다.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예방을 목적으로 1991년부터 119를 상징하는 날이 제정되었다. 2017년 소방청이 신설된 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세종대왕 재위 때인 1426년 수도인 한양에 큰 불이 일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옥이 불에 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최초의 소방관청인 ‘금화도감’이 설치되었다. 현재의 소방서를 뜻한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관은 1431년에 창설된 ‘금화군’이고, 직접 출동해 불을 끄는 전문 소방관인 ‘멸화군’으로 개편되었다. 최초의 현대식 소방서는 1925년 경성소방서다. 이후 1958년 처음 소방법이 제정되었다.

소방의 날, 생각나는 책 한 권이 있어 소개한다. <소방관의 선택>이다. 20년의 현장 경험과 10년의 심리학 연구를 통해 발견한 생과 사를 가르는 순간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법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키 155cm, 몸무게 48kg으로 영국에서 직급이 가장 높은 여성 소방관 중 한 명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열여덟 살에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웨일스 소방 구조대에 들어갔다. 약 20년 동안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웨스트민스터 테러 공격, 홀본 지하 터널 화재 등 여러 대형 사건에 참여했다. 긴급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과 지휘 기술에 관한 연구로 다수의 상을 받았다.

“아버지는 건물 밖으로 모든 사람이 뛰쳐나갈 때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일선 소방관으로, 그리고 소방 지휘관으로 일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얼마나 옳았는지 절감한다.”(들어가는 말, 13~14쪽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2장인 ‘난제’였다. 터널 사고가 나고 폭발물이 터졌는데 다른 더 큰 폭발물이 남아있다. 소방 지휘관은 철수 요청을 했지만, 철수에 불응한 소방관이 있었다.

사진 출처 : mchesin, Unsplash

왜 그는 자리를 떠날 수 없었을까. 그곳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소방관의 딸과 비슷한 또래였으니 자신의 딸이 자연스레 떠올랐을지도.

“하지만 이 아이를 두고 혼자 나가진 않겠습니다(중략). 누군가의 딸이에요. 제게도 같은 나이의....” (본문 72쪽 중에서) 결국 그 소방관은 아이를 살리려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고와 재난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절절하게 전해진다. <소방관의 선택>에 등장하는 모든 사례는 저자가 겪었던 실제 상황에 기반하고 있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처럼 읽히는, 흡인력 있는 긴박한 전개다.

어려운 순간마다 기지를 발휘해야 할 때 소방관의 지혜를 빌린다. 때로는 너무나 적나라해서 가슴이 철렁거릴 정도로 생생한 상황 묘사는 책을 읽는 내내 사고 현장에 있는 듯이 착각하게끔 만든다.

저자의 동료들에 대한 애정이 책 곳곳에서 느껴졌다. 연구 사례 또한 자신이 동료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심리학적·신경과학적 실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에 관한 실마리는 다른 책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뢰감을 준다.

소방관은 모든 사람이 재난으로부터 도망칠 때, 가장 먼저 위험에 맞서는 사람들이다. 최악의 순간에서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 동료들을 잃은 슬픔과 트라우마 속에서도 국민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사람들이다.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앞두고 화순소방서 소방관들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방방곡곡 김민지 문화평론가

* 네이버 블로그(mjmisskorea) ‘애정이 넘치는 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다.
* 방방곡곡은 다양한 책과 문화 속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