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이란 무엇인가?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를 벗어나는 것
칸트에게 계몽은 "자율적 사유의 주체가 되는 것"
화순저널입력 : 2022. 05. 25(수) 14:22
임마누엘 칸트
1783년 독일 베를린에서는 하나의 논쟁이 벌어진다. 계몽의 시대에 시민들의 결혼에 더 이상 종교가 관여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된 것이다. 이에 개신교 목사 쵤너가 종교의식을 생략한 결혼식이 ‘계몽’이라는 이름하에 성행하는 풍조를 개탄하면서 도대체 계몽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비장하게(?) 던진다. 그리하여 독일 지식사회에서는 계몽논쟁이 촉발되었고 이러한 논쟁에 참여한 사람 중의 하나가 칸트였다. 칸트는 1784년 <베를린 월간 학보>에 발표한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을 통해 계몽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잘못으로 초래한 미성년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상태란 다른 사람이 이끌어 주지 않으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미성년상태의 원인이 지성의 결핍 때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지 않고서 지성을 사용할 결단력과 용기의 결핍 때문이라면 미성년 상태는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것이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슬로건이다.”
(AUFKLÄRUNG ist der Ausgang des Menschen aus seiner selbstverschuldeten Unmündigkeit. Unmündigkeit ist das Unvermögen, sich seines Verstandes ohne Leitung eines anderen zu bedienen. Selbstverschuldet ist diese Unmündigkeit, wenn die Ursache derselben nicht am Mangel des Verstandes, sondern der Entschließung und des Mutes liegt, sich seiner ohne Leitung eines andern zu bedienen. Sapere aude! Habe Mut, dich deines eigenen Verstandes zu bedienen! ist also der Wahlspruch der Aufklärung.)

흔히 우리는 계몽이라면 선각자가 무지한 사람을 이끌어 깨우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칸트가 말하는 계몽은 뜻을 조금 달리한다. 칸트에게 계몽은 자율적 사유의 주체가 되는 것, 그것이 곧 계몽이다. 칸트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이성을 사용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나 종교 그리고 정치적 권위과 같은 외부의 지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그것들의 품에 안주하려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사람들이 미성년 상태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이유는 나태와 비겁에 굴복하여 자율성을 발휘하려는 용기와 결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칸트에게 인간이 지적인 의존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하고 자율적인 개인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그 자유의 토대위에서 비로소 인간 이성의 정당한 활용이 가능해 진다.

칸트는 사적 이성과 공적 이성을 구분한다. 사적 이성이란 인간이 ‘그에게 맡겨진 어떤 시민적 지위나 공직에서 이성을 사용하는 것으로, 현실의 직분을 다하기 위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의무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군 장교는 근무 중엔 자신의 신념에 반하더라도 장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상급자의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이다.
반면 이성의 공적인 사용이란 사적인 지위나 공직에서가 아니라 ‘학자로서’ 공개적으로 이성을 사용하는 것으로 현실의 직무와 지위를 초월한 ‘세계시민’의 위치에서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스스로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비록 군 장교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병역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대중 앞에서 발표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가 특히 주체적으로 사용할 용기를 강조하는 이성이 바로 이 공적 이성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삶은 사적 이성에 충실하며 나의 경계를 초월하여 공적 이성의 실현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 학살의 책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통해 공적 이성이 파탄 나버린 결과가 초래하는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의 비극을 보고한 바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라고 말한다. 인간은 언어로 사고하므로 내가 이해하는 오직 그 언어의 한계가 곧 나의 사고의 한계이며 나의 사고의 한계는 곧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면서, 지금부터 “철학은 우리의 언어 수단에 의해 우리의 오성(悟性)에 드리워진 마법에 대한 하나의 투쟁(Die Philosophie ist ein Kampf gegen die Verhexung unseres Verstandes durch die Mittel unserer Sprache)”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명제는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 즉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종교 이를테면 이데아 존재 본질 신(神) 진 선 미 등 이른바 세계를 초월해 있는 ‘신비스러운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말할 수 없고 단지 보여질 수 있을 뿐이라는 얘기이다. 이 언급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존재론적으로 증명하려는 유혹 앞에 언어를 왜곡해 왔던 철학자나 신학자에 대한 비판이자 이제 철학의 임무는 언어와 사고의 명료화이며 그를 통해 우리의 삶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증명은 자연과학의 문제이지 철학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노자의 도상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혹은 불교 선종의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언어의 마법은 비단 기존 철학자들만의 전유물이었을까? 우리도 일상의 현실에서 언어가 제 모습을 박탈당한 채 멀리 유배된 경우를 수없이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정치인들의 수사가 그러하다. 유신 헌법과 독재자의 종신 집권의 기도가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로, 내란범죄와 반인도적 양민 학살이 ‘정의사회 구현’으로, 노동력 착취의 용이화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으로 포장되지 않던가. 이번 대선 과정 역시 크게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무속논란이 보여주는 반계몽(反啓蒙)의 미성년적 행태와, TV토론이 중계하는 극명한 언어의 한계와, 몰상식과 불공정이 ‘상식과 공정’으로의 위장된 전도와, 자본과 권력의 억압을 욕망하며 불합리를 용인하고 지지하는 도착된 심리와, 부동산으로 표현되는 물신숭배 그리고 언어를 변기통의 배설물로 전락시킨 이른바 ‘기레기’ 언론의 민낯을 여실히 목격하지 않았던가?

<계몽이란 무엇인가>는 제1부 ‘계몽이란 무엇인가?’ 제2부 ‘사상과 언론의 자유’ 제3부 ‘계몽과 혁명’ 세 개의 부로 구성되었다. 위에 언급한 칸트의 글과 함께 뫼젠 멘델스존 등 당대 계몽 논쟁에 참여한 철학자들의 글 16편이 실려 있다. 계몽의 개념과 의미와 당시 독일의 시대적·지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칸트는 자신의 시대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지금 계몽된 시대에 살고 있는가?”(leben wir jetzt einem aufgeklärten Zeitalter?) 그리고 대답한다.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다.”(Nein, aber wohl in einem Zeitalter der Aufklärung) 지금 우리도 묻는다. 2022년의 한국사회는 과연 1784년 칸트의 당대와 몇 걸음만큼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꽃이 속절없이 피고 진다. 그러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꽃의 향기와 빛깔은 가슴의 언어가 되지 못하고 봄 아닌 봄의 끝자락에 그저 회색의 물성(物性)으로 망연히 참담하게, 실종하고 있다.

<김다록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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