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의 전략
사람과 함께한 풀들의 생존전략을 흥미롭게 들려줘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한낱 잡초라도 지구 생태계의 일원 임을 명심해야
화순저널입력 : 2022. 02. 20(일) 18:37
입춘이 지났으니 이제 봄이 지척이다. 사람들은 입춘이면 춘첩을 써서 기둥이나 대문에 붙이고 자신들의 바람을 하늘과 땅에 그리고 사람에게 널리 알린다. 요즘은 그 많던 춘첩이 모조리 사멸하고 오직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으로 거의 획일화 되어 건조하기 짝이 없다.

<경도잡지>나 <동국세시기>같은 옛 문헌들은 ‘유색황금눈 이화백설향’(柳色黃金嫩 梨花白雪香) ‘계호신세덕 견폐구년재’(鷄呼新歲德 犬吠舊年災)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등 옛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재미있는 여러 문구들을 오늘의 우리에게 전한다.

사람들이 설레는 만큼이나 식물들도 봄이면 그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무는 나무대로 겨울 내내 회색으로 침묵하던 가지에 움을 틔우고 풀은 풀대로 얼었던 땅에 싹을 틔우며 마치 게릴라의 기습처럼, 산과 들을 짙푸르게 채색할 것이다. 사람들은 곧 순식간에 발화하는 ‘기화요초’(琪花瑤草)를 매우 놀라워하며, ‘엘랑 비탈’(élan vital)의 숨 가쁜 만개를 여실히 목격할 터이다.

<풀들의 전략>의 지은이는 ‘잡초생태학’을 전공했다. 이 책의 지은이가 일본인이라 일본 땅에 자라는 풀들을 관찰했겠지만 제비꽃 광대나물, 쇠뜨기, 냉이, 민들레, 질경이, 망초 등, 우리 땅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풀 50가지를 세밀한 그림과 함께 풀들이 생육과 번식을 위해 진화시켜온 생존 전략의 모습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제비꽃은 씨앗에 젤리 같은 ‘엘라이오솜’이라는 물질이 붙어있는데 이를 개미가 좋아한다고 한다. 개미는 그 물질을 먹기 위해 제비꽃의 씨앗을 집으로 옮겨갔다가 먹고 난 후 씨앗을 집밖으로 버린다고 한다. 제비꽃이 후손의 번식을 위해 선택한 방법의 하나이다.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됐던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싹을 틔운 것이 쇠뜨기였다고 지은이는 전한다. 쇠뜨기의 땅위줄기는 불과 몇 십 센티에 불과하지만 뿌리는 땅속으로 깊이 종횡무진 뻗어나간다고 한다. 그 때문에 원자폭탄의 방사능 열선을 견디고 금방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망초는 근대에 들어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온 귀화 식물로 철도 보급과 함께 널리 퍼져 나갔다. 망초는 잎차례가 즉 잎이 나는 순서가 360도의 8분의 3인 135도씩 돌아가면서 벌어지는데 8번째 잎에서 줄기를 세 바퀴 돌고 원래의 위치로 돌아 온다. 망초는 잎차례가 피보나치수열에 충실한 식물로 식물이 이 수열에 따르는 것을 심퍼-브라운의 법칙이라고 한다. 식물이 이러한 잎차례를 갖는 이유는 모든 잎이 햇빛을 골고루 효율적으로 받고 줄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위의 내용은 <풀들의 전략>의 지극히 일부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풀들은 상호 경쟁하며 ‘근검’, ‘절약’, ‘도주’, ‘저항’, ‘유혹과 위장’ 등 기상천외한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고 한다. 그와 함께 “자연에는 상호투쟁의 법칙 이외에도 상호부조의 법칙이 존재하는데,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특히 종이 계속 진화하기 위해서는 상호부조의 법칙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크로포트킨의 주장처럼 <풀들의 전략> 또한 ‘다른 생명과의 조화’야말로 풀들이 선택한 최선의 생존 전략임을 시사한다. 사람의 세상살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야생풀을 농사나 미관을 해치는 잡초로 치부하고 경원시 혹은 적대시하며 그것들을 발본색원하고자 마구 제초제를 살포한다. 그러나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황량한가. “땅은 이름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地不長無名之草)는 <명심보감>의 말씀처럼 풀들은 모두가 지구 생태계에 중요한 일원이며 생태계의 ‘적십자’로 ‘백혈구’로 ‘부스럼 딱지’로 ‘반창고’로 ‘항생물질’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땅과 뭇 생명들을 북돋우는 근본이자 토대라 하겠다. <풀들의 전략>은 미처 이해하지 못했거나 무관심하던 풀들의 고군분투하는 ‘코나투스’(conatus)의 역능을 우리로 하여금 생생하게 느낄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김다록 자유기고가>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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