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한국사회과학연구소가 발행하는 『동향과 전망』 2001년 봄호에서는 특집으로 ‘박현채와 민족경제론’을 기획했다. 유수의 경제학자들이 잡지에서 본격적으로 민족경제론을 분석, 평가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기에는 조석곤의 「민족경제론 형성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그 이론화 과정」, 이병천의 「다시 민족경제론을 생각한다: 국민경제와 민주주의의 정치경제학」, 박순성과 김균의 「정치경제학자 박현채와 민족경제론: 한국경제학사의 관점에서」가 게재되었다.

우선 조석곤이 분석한 민족경제론의 의의를 살펴보자. 그는 민족경제론이 1970년대 현실에서 도출된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에 와서도 유의미한 이유를 주목하고 있다.

민족경제가 지향하는 경제는 자립경제다. 박현채는 자립경제를 한 민족이 자기 민족의 민족적 순수성을 유지하면서 외부적 제약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경제적 기초로 규정했으며, 경제 자립을 평가할 수 있는 기초로 재생산 조건의 장악과 자기 완결적인 자율적 재생산 메커니즘의 실현, 국민적 확산 메커니즘의 확보, 국민경제와 민족경제의 통합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자립경제론은 국지적 시장권론에 입각한 오쓰카〔오쓰카 히사오(大塚久雄, 1907~1996), 일본 경제사학자-필자〕의 국민경제론에 영향 받은 바 크다. 그러나 이 국민경제형성론은 선진 국가의 역사로부터 검출된 것으로 후진국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특히 현재처럼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자립경제론의 또 다른 문제의식인 매판∙예속 경제로부터의 탈피와 경제 민주화의 달성을 지향한다는 관점은 국내 분업 연관의 문제, 자본 자유화 시대에 있어서 투자 재원의 국내 조달 문제 등과 관련하여 현 시점에서도 여러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조석곤, 「민족경제론 형성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그 이론화 과정」, 『동향과 전망』, 2001년 봄, 11쪽

한편 이병천(현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은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에서 혼신의 힘을 불어넣은 글쓰기의 정열과 치열함을 엿보았다. 또한 민족경제론을 관념적 이론과 경험주의의 이분법으로 떨어지지 않으면서 당대 비평과 역사 비평을 통합하고, 나아가 학술과 운동의 통합까지 시도한 하나의 전범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경제이론사에서 박현채만큼 비판적 글쓰기의 유산을 남기면서 풍부한 연구 과제를 던져준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박순성(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과 김균(현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예리한 지적도 있다. 이들은 제 민족과 가난한 자에 대해 복종하는 도덕성, 이론의 명령을 실천으로 옮기는 지적 도덕성, 이러한 도덕성을 삶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견지하는 더 큰 도덕성, 이것들이 박현채 삶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이만한 크기의 도덕성을 갖고 있는 사회과학자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것이 박현채가 우리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력의 실체일 것이다.

하지만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에 대해 비판도 적지 않았다. 관변 학자와 보수 언론인들은 민족경제론을 ‘좌파 이론’으로 극렬하게 매도했다.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비난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학문적 비판 중에는 받아들일 만한 대목도 있었다.

민족경제론은 종속형 자본주의 발전을 설명하는 체계화된 이론으로 발전해야 된다는 현실적∙이론적 요구에 대응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계획을 구체화시키는 데에서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 민족경제론의 한계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민족경제론 내부에서 이야기하는 이론적 도구의 빈곤에서, 탈종속의 전략을 체계화하고 대안 체계를 제시할 비전의 부족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한계는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서 비판적 정치경제학의 사변화 또는 한국경제 현실에 대한 침묵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러한 한계가 한국경제에 대한 실증 분석의 증대와 비마르크스주의적 정치 경제학에 대한 이론적 모색에 의해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도 나타났다.

- 박순성∙김균, 「정치경제학자 박현채와 민족경제론: 한국경제학사의 관점에서」, 『동향과 전망』, 2001년 봄, 100쪽

한편 정윤형은 경제학자 겸 평론가로서 박현채의 전성기는 1980년대가 아니라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후반 『민족경제론』이 나오기까지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1980년대는 ‘박현채의 연대’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의 이론이 회자되었던 시기이지만, 정윤형은 『민족경제론』을 박현채 이론의 핵심으로 보았기에 ‘1970년대 전성기론’을 제기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