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로 구성된
돌격중대 문화부 중대장 생활



우리 부대에 돌격중대라는 소년보위중대가 조직되었다. 20세 미만의 소년들을 기간으로 조직된 이 부대는 이미 조직되어 있었던 따발⋅강철⋅폭탄중대와 함게 540지구 부대 기동대의 한 구성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독립중대의 문화부 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독립중대의 중대장은 화순중학교 6학년인 김안근이 되었고, 대원들은 약 30명을 약간 넘어서는 수였다. 설건방진 일부 서울내기 의용군 출신을 제외하고는 대원들은 순진한 농민 출신이었다.

- 박현채, 「육필회고록」, 『박현채 전집』, 1, 해밀, 2006, 31~32쪽

20세 미만의 소년들을 주축으로 조직된 돌격중대 문화부 중대장에 임명된 박현채는 먼저 문맹 퇴치에 나서 대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글을 모르고서는 유능한 빨치산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달여 만에 대원들 대부분이 한글을 해독하게 되자, 다음으로는 교양교육을 시켰다. 박현채 혼자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상부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박현채에게도 좋은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광주서중의 스승이자 부댕의 정치부 출판국장이었던 박준옥이 여러모로 박현채를 도와주었다. 그는 여러 교재를 제공해주면서 시간 날 때마다 부대에 와서 지도를 해주어서 중대의 교양 활동에 도움을 주었다. 그 덕분에 부대의 정치적 수준은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효율적으로 부대가 장악되었다. 1951년에 재귀열(풍토병)이 돌았는데, 박현채의 중대에서 단 한 사람의 환자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렇게 빨치산 간부로서 그의 삶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이때 박현채는 얼굴이 하얗고 풍채가 좋았으며 하얀 장갑을 끼고 권총을 차고 다녔는데, 이런 그의 모습은 여러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늘 ‘공부는 끝까지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반드시 하나로 뭉쳐야 한다’, ‘우리가 해결할 최우선 과제는 경제 문제다’,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얻어야 한다’ 등을 강조했다.

특출한 능력과 수려한 외모로 박현채는 부대에서 인정을 받았다. 동료 김경추는 박현채가 나이는 어렸어도 워낙 영리하고 이론이 정연했기 때문에 대원들뿐만 아니라 당간부들까지 정신교육이나 사상교육을 시켰다고 증언한 바 있다. 박현채는 김경추에게도 소양교육을 받으라고 제안했는데, 김경추는 ‘여기까지 와서 뭘 또 배우나’라고 생각하며 도망갔다고 한다. 또렷한 말투나 음성 덕분에 총채아(총대장-필자)도 박현채를 총애했고 여성 동무들도 많이 따랐다고 한다.

당시에 박현채는 부대에서 소 잡는 기술을 배운 후 농가에서 끌어온 보급용 소를 잡아 부대원들에게 보급하곤 했다. 소의 쓸개나 어쩌다가 나오는 우황을 모아 중상 환자들에게 주었다. 대원들의 표정에서는 불만이 엿보였지만, 중상자에게 주는 것을 내놓고 불평하지는 않았다.

1951년 1월 초에는 백아산에서 무등산으로 이동하는 대행군이 강행되었다. 하지만 국군 20연대의 공격으로 백아산으로 되돌아온 후, 1월 중순에 곡성군 겸면으로 보급 투쟁을 갔다가 인민군의 서울 점령 소식을 듣게 된다. 이들은 마을에서 소를 몇 마리 보급해다가 잡은 후 대규모 축하 오락회를 열었다. 오락회에 참여한 전 대원들과 한 잔씩 술을 나눠 마시고, 그다음에는 자유롭게 음주를 즐겼다. 박현채 역시 술을 많이 마셨다. 하지만 그날 심야에 소집 명령이 떨어지자 부대원들은 발걸음을 옮겨 화순군 북면 서유리로 이동했다.

박현채가 속한 부대는 서유리에서 광주를 정찰하며 광주 진격을 준비했다. 대원들은 앞 다투며 이 전투에 나서기를 지원했다. 전투에 참가하면 광주에서 죽게 될 가능성이 컸다. 박현채는 자신이 활동했던 광주에서 죽게 될 경우 시신을 알아볼 사람들이 많고, 정치투쟁 과정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던 학교 동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이 되었다. 또한 부모님이 시신을 확인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따라서 최소한 광주에서만큼은 죽음을 맞지 않아야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현채는 이를 투쟁에 참여할 때의 원칙으로 삼았고, 유격 투쟁이 격화되는 가운데에서도 이 원칙을 견지했다.

한편 박현채가 있던 돌격중대는 1951년 3월경에 해체되었다. 그는 지구사령관 보위병에 임명되었으나 곧 해임되어 대대 정치부 대기로 원상 복귀했다. 한동안 소속 없이 보급 투쟁에 참여하다가 낙오되어, 여러 날 갖은 고비를 겪다가 부대에 합류하기도 했다. 얼마 뒤 박현채는 1대대 정치지도원 겸 연대 부정치위원으로 뽑혔다. 문화부 중대장으로서의 활동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