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가 어린 나이에 입산을 결심한 것은, 광주서중의 대표적인 활동가였기에 계속 광주에 남아 있으면 우익들에 의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현채와 수창국민학교 동창인 김희중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냐면, 여기 있어도 죽고, 가서도 죽으니까, 그때 50년 10월 무렵에는 빨갱이라고 하면 총 쏴서 죽여버리면 그걸로 끝나버리는 세상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시골 같은 데에서 그랬으니까, 여기 있어도 죽고 가도 죽으니까 차라리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래서 “그럼 어머니 나 가겠습니다”하고, 처음으로 내가 철이 들어서 한 말이, 철이 들어서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무릎 꿇고 절을 하고 갔다고, 그 말을 들었어요.

- 김원,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현실문화연구, 2011, 269쪽

박현채는 외가 친척들을 통해 루트를 파악한 후 입산을 결행했다. 그렇다고 박현채의 입산 동기가 정치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중학 시절부터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학습하고 실천해왔다. 그러던 중 전쟁이 일어나고 이념갈등이 불거지자 입산을 택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의 육성을 통해 빨치산 2년여의 행적을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1950년 9월 29일 아침, 23명의 동료 학생들이 노령산맥 언저리의 도로가에 모였다. 그들은 각자 갖고 있는 각종 증명서와 서류들을 한데 모으고 거기에 국기 등 깃발을 모았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게 목소리로 국가가 불렸다. 노래는 점점 커지면서 오열로 변해갔다.

1950년 9월 28일, 인민군의 전면 철수와 함께 우리는 학교 단위로 1개 소대를 편성, 철수를 준비했다. 우리는 학교를 떠나 광주사범학교로 집결하여 최후 비상선에 대해 논의했고 약간씩 자금이 배분되었다. 최후 비상선은 춘천이었으며, 임시편제이기는 하지만 편성은 소대편제로 되었고, 노령산맥을 통한 정읍으로의 철수가 시달되었다.

여름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우리의 철수 준비는 9월 말이라는 가을날씨에 비추어 그다지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담양에서 저녁 급식을 받았고, 저녁이 되어 집단적으로 국도를 거쳐 철수가 시작되었다. 늦저녁 추위가 엄습했고, 먹을 것 없는 우리의 행군은 초라했다. 철수를 위해 모인 수백 명의 대원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었다. 그러나 우리는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도 주변에 즐비한 농작물 가운데서 겨우 익은 벼의 낟알에도 손을 대지 못하도록 규제와 자제를 했다. 일부 조급하고 미숙한 친구들이 밭작물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러한 행위는 모두에게 자율적 규제의 대상이었고, 공공연히 큰 규모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녁이 깊어지면서 추위와 굶주림은 더해갔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을 점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행군을 계속했다. 그러나 발걸음은 점점 더디어갔으며 그간에 전차 캐터필러〔무한궤도-필자〕의 굉음이 우리를 가로막기 시작했다. 거의 새벽이 되어 여명이 우리 앞을 밝혔을 때, 전차의 굉음 소리 속에서 정읍 함락의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는 모여서 소지품을 처리한 후에 상급생인 5~6학년은 적진을 뚫고 월북할 것을 결의했고, 어린 소년들인 4학년과 조직의 신규 참여자 등은 집으로의 귀환이 결의되었다.

- 박현채, 「육필회고록」, 『박현채 전집』, 1, 해밀, 2006, 24쪽

당시 중학교는 6년제로, 여기서 말하는 ‘5~6학년’은 지금의 고등학교 2~3학년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빨치산이자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이현상(李鉉相, 1905~1953)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진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은 뒷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알겠습니까?
전투에서 죽은
수많은 군경과
빨치산들에게 물었을 때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목숨 바쳤다고
대답할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 차길진, 「차일혁 총경을 추모하며」,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 기린원, 1990, 29~30쪽

박현채가 입산한 것은 광주서중 3학년 때였다. 앞의 기록으로 보아 중학교 상급생들도 빨치산 부대에 참여했던 것 같다. 이들의 선택은 과연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이념에 따른 것이었을까, 아니면 시대 상황과 가족, 학교, 마을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나〔박현채-필자〕는 집으로 그냥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향〔화순-필자〕으로 가거나, 아니면 안이한 낭만적인 생각이지만 곡성에 있는 도림사로 가서 중이 되는 것이 그때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담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한 떼의 인민군과 민간인의 철수 집단을 만났다. 철수 집단 중에는 세 사람의 민간인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수창국민학교의 선생님이었고, 그것에 따라가는 의용군 모습의 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는 나의 수창국민학교 여학생 동기이고, 나이 먹은 비무장의 민간인은 박태남이라고 하는 의용군 후방사령이라고 했다.

동기인 여자 의용군은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남자 새끼들이 총소리 몇 방에 떨어 북으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일단 가기로 마음먹었으면 모든 시련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조직원의 정상적인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그것을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있는 것은 투항의 의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녀의 이야기는 우리를 흥분시켰고 분격케 하여 모두들 북을 향한 철수의 길을 다시 되돌아가게 했다.

- 박현채, 「육필회고록」, 『박현채 전집』, 1, 해밀, 2006, 24~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