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소월의 시, 「접동새」

「접동새」는 김소월이 18~19세 전후 배제고보 졸업반 시절(1922년)에 쓴 작품이다. 가히 천재 시인이 아닐 수 없다.
일제하에서 느꼈던 민족의 한을 시로 풀어낸 민족시인 김소월은 어릴 적에 함께 살던 숙모에게서 옛날 이야기와 노래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어릴 적 숙모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이후 시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중에서 ‘접동새’는 숙모가 들려준 옛이야기에서 행복했던 자신의 옛시절을 그리워하며 지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접동새와 얽힌 설화 내용은 계모에게 박대 받다 견디다 못해 죽은 누이가 접동새(두견, 소쩍새)가 되었다는 줄거리이다.

옛적에 열 남매를 둔 한 아버지가 아내를 잃은 후 재혼했는데 계모가 매우 포악했다. 맏딸이 혼기가 꽉 차 어느 도령과 혼인을 하기로 약속했다. 부잣집 도령의 집에서 예물을 그 누이 집으로 많이 보냈다. 이를 시기한 계모는 맏딸을 장롱에 가두고 불을 내 죽였다. 소녀가 죽은 뒤 그 혼이 접동새가 되어 밤마다 찾아와서 울었다. 관가에서 이 사실을 알고 계모를 붙잡아다 불에 태워 죽였는데 재 속에서는 까마귀가 나왔다. 접동새가 된 소녀는 아홉 남동생들을 걱정했지만 까마귀가 무서워서 깊은 밤에만 동생들이 잠자는 창가에 와서 슬피 운다는 설화이다.

소녀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고 의붓어미는 죽어서 까마귀가 되었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접동새는 까마귀가 잠드는 밤에만 나와서 운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평안북도 출생인 김소월의 고향에서는 ‘접동접동’ 하고 운다고 하여 접동새라고 하고, 경남지방에서는 방언으로 두견이라고 하지만, 한글학회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소쩍새를 곧 두견이, 접동새, 자규(子規), 촉백(蜀魄)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된 시집살이 끝에 굶어 죽은 며느리가 소쩍새가 되어서 “솥 적다, 솥 적다.” 하고 우는 소쩍새의 유래를 보더라도 각 지방에 따라 달리하는 설화가 있을 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까마귀는 원래 은색의 아름다운 새였는데 아폴론 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 나 그 벌을 받아 까맣고 흉한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반대로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뀐 예가 있다. 중세시대의 의사들은 검은 가운과 허브가 든 까마귀 가면(마스크)을 썼는데, 살이 검은색으로 썩으며 죽는 흑사병(페스트)이 창궐한 이후부터, 청결한 이미지의 흰 가운과 흰 마스크로 바꿨다는 기록이 있다.

까마귀가 다른 새와 달리 유독 부정적인 의미로 일컬어진 이유는 ‘시체를 먹는 새’라는 점에서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뭔가를 까맣게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빗대어 “까마귀고기를 삶아 먹었나?” 하는 말이 오죽했으면 나왔을까? 더불어 제비나 참새와 같은 작은 새들도 잡아먹는 잡식성이니 접동새가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고종 때의 유명한 가객(歌客)이었던 박효관의 시조에 보면 ‘공산(空山)에 우는 접동새야 너는 어찌 우짖느냐 / 너도 나와 같이 무슨 이별하였느냐 / 아무리 피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라고 읊었다. 이를 보더라도 애절하게 우는 접동새는 한(恨)을 표출하는 소재로 많이 쓰였다.

의붓어미에 맡겨진 아우래비(아홉 오래비) 접동은 까마귀 같은 의붓어미 앞에 떨고 있는 어린 새와 같았을 것이다. 언제 잡아먹힐 줄 모르는 어린 접동새들처럼 죽어서도 동생들을 못 잊는 누이의 심정을 노래한 김소월의 「접동새」 시를 읽고선 한동안은 심장이 먹먹해진다.

문장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