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학 정립에 많은 영향을 끼치다
『박현채 평전』 7장 왕성한 저술 활동으로 이론을 펼치다
화순저널입력 : 2021. 12. 17(금) 20:34
고은, 리영희 등 지식인⋅문인들과
막역한 교우



‘1980년대는 어떤 의미에서 박현채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한 시인 고은(高銀, 1933~)은, 박현채의 「문학과 경제」를 읽고 그를 민족문학작가회의 평론분과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경제학자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정식 회원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오래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막역했다. 박현채는 평소에 농담 삼아 고은의 출가 시절의 법명인 ‘일초(一招)’를 ‘일초(一樵)’로 바꾸라고 했다. 세사를 초월한다기보다 하나의 나무꾼이 더 어울린다는 뜻이었다.

박현채는 역시 막역한 사이였던 리영희에게도 아호(雅號)를 지어주었다. ‘말갈(靺鞨)’이라는 다소 엉뚱한 아호였다. 물론 리영희는 내켜하지 않았고, 이 아호를 쓰지 않았다. 말갈은 퉁구스족의 일족으로 삼한 시대에 생긴 이름인데, 시베리아⋅만주 동북 지역⋅함경도에 걸쳐 살면서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구려가 건국하면서 이에 복속하고, 고구려가 망하자 대조영이 세운 발해에 예속되었으며, 일부는 신라에 들어왔다. 리영희의 생김새와 투박한 북방 언어를 두고 박현채는 반농담으로 ‘말갈’이라는 아호를 지은 것이었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특히 참여문학 진영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민족문학의 정립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민족문학의 기수’ 백낙청의 증언이다.

민족문학에 관한 나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에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은 기록에도 뚜렷하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민족문학 자체의 일부로 그의 업적을 인식할 필요는 없는 것인가? (……) ‘민족경제’ 개념을 중심으로 수행해온 박 선생의 문필 활동이, 문학에 관한 명시적인 언급이나 민족문학론의 전개에 미친 영향을 넘어서, 그리고 간혹 독자들의 불만을 사온 그 문장의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문학’의 범위를 옛사람들처럼 넓게 생각한다면 마땅히 이 시대의 문학적 성과 중에 꼽히리라는 생각을 나는 오랫동안 해온 터이다.

민족문학론이 그에게 빚진 바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했지만, 박 선생과 관련한 숱한 사실이 그렇듯이 이 문제도 기록을 대충 보아서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가령 내가 민족문학에 대한 개념 정리를 처음으로 시도한 1974년의 글에서 ‘국민경제’와 구별되는 ‘민족경제’의 개념을 원용했고, 이듬해 발표한 『민족문학의 현단계』는 4⋅19를 논하면서 『창작과 비평』 1973년 봄호에 실렸던 「한국경제개발계획의 사적 배경」이라는 글을 인용했지만 그중 어느 곳에서도 박현채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1978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하는, 그러니까 예의 내 글보다 뒤에 나온 그의 저서들 여기저기를 들춰봐야 비로소 그러한 인용문들이 주인 자신의 문패 아래 얼굴을 내밀고 있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자기 이름으로 글을 내기가 힘들던 저자의 처지와 시대적 분위기, 그런 암혹한 상황에서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지식인적 실천을 계속해간 본인의 집념과 그렇게 할 수 있게 만든 동지들의 감싸줌, 이런 것들을 빼놓고 ‘실증적’ 자료에만 의존한다면 어떤 엉뚱한 결과가 나올지 상상함 직하다.

- 백낙청, 「민족문학 속에 자리잡은 민족경제론」, 『민족경제론과 한국경제』, 창작과비평사, 1995, 436~437쪽


1980년대의 진보적 문학운동 단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자실)’를 이끌었던 작가 박태순은 박현채와 문인 사회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경제평론가’라는 직함의 박현채 선생의 존재가 한국 문인들에게 알려지고 아울러 다가오게 된 것은 1970년대 초중반 문예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간간이 발표되던 그의 글들과 그리고 문학운동 단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활동에 매개되면서부터다. 비판적 사회분석 담론이라 할 그의 문필 활동은 과학적 인식론이 허약한 문인들에게 소경이 눈 뜨듯 하는 경각심을 일깨우게 했는데, 이 무렵 한국문학의 일각(자실)에서는 한국 사회의 개발 독재, 또는 독재 개발 상황에 대하여 전혀 다른 방향과 관철로서 ‘민중문학/민족문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해가는 중이기도 했다.

- 박태순, 「문학과 경제의 민중 구성」, 『아! 박현채』, 해밀, 2006, 137~138쪽


특히 앞서 소개한 박현채의 「문학과 경제」는, 양심적 한국 문인들을 감동시키면서 문학의 사회과학적 인식론에 눈뜨게 했다. 이 평론에 대해 박태순은, “한 세상 속에 매이면서도 다른 세상의 꿈을 버리지 아니하여 두 세계를 살아간 이의 업적과 그 꿈을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가. 문학과 경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한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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