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화순군’이라는 행정명칭이 시작된 것은 1914년부터였습니다. 화순군이 탄생한 지 110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2014년은 화순군 100주년의 해였지요. 100년이라는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고 기념할 만한데 그냥 지나가게 되어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에 시작해 해방, 한국전쟁, 4·19, 5·18 등 격동기의 파란만장한 사건을 거치며 오늘에 이른 화순군은 한때 인구가 15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으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현재 인구는 반토막으로 줄었고 지방소멸의 위기를 고스란히 맞이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광주가 전남도청의 소재지로 정해지면서 우리 화순군은 광주와 전남의 남부지역을 잇는 매우 중요한 관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73%나 되는 산지로 농사지어 먹고 살기 힘든 땅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산업사회 이후로는 교통과 물류의 요지, 산지수려한 자연환경, 140만 거대도시의 소비 수요를 곁에 둔 발전 잠재력이 큰 고장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시·군 중 세 번째로 큰 면적과 6만을 넘어가는 인구, 오늘날 8천억 원의 예산을 운용하는 괄목할 만한 자치단체로 부상한 화순은 가히 상전벽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의 커다란 변화 끝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비교적 우수한 지정학적 조건과 발전 잠재력을 갖주초 있지만, 시대의 흐름은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와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화순군이 개청할 당시와 백 년이 지난 현재의 사회·역사적 변화 앞에서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치하에서 근근이 목숨을 연명하며 좁은 전답에 의존하던 시절을 지나 해방을 거쳐 산업사회와 지식정보사회를 거쳐 바야흐로 제4차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인류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로봇 기술과 인공지능, 인터넷 등을 통한 초연결성과 빅데이터 등을 통해 물질생활의 비약적 변화를 가져온 4차산업혁명을 넘어 GPT의 출현으로 인간의 지능과 판단을 대체하고, 상상을 현실로 이루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는 지금, 우리 고장은 시대적 의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지역의 변화를 끌고 갈 만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정치권에서 정권교체기마다 제기되는 단골 의제가 있습니다. 바로 개헌 문제입니다. 왜일까요?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국민의 뜻을 모아 추진했던 직선제개헌이 40년이 지난 지금 다원화된 시대의 새로운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정치체제로서 적합한지에 대한 문제의식입니다.

우리는 지난 2천 년을 경유하며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새천년에 제기되는 인류사적 의미를 점검하고 새로운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과제도 달라집니다. 우리 화순군 역시 개청 100주년의 의미를 새로이 조명하고, 새로운 100년을 기약하는 의제와 중장기적 발전방침을 모색하는 커다란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해방 후 권위주의 정부에서 오늘의 지방자치 시대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커다란 변화도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직접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내용적 큰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주민참여라는 명분과 실질적 지방자치의 한계 속에서 사회적 양극화, 기후변화, 지방소멸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화순군 개청 100주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의 모멘텀(momentum)을 마련하는 중요한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방자치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에 최적화된 정치제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단체장의 정치적 수준과 요구에 따라 지역의 정책과 방침이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전락해 행정력과 예산의 낭비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지방정치인들의 정치적 경쟁과 잦은 선거로 인해 단기적인 승부에 집착하다 보니 지역의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사업에 소홀해지는 부작용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주요산업으로 유지해왔던 석탄산업의 시대를 끝내고 폐광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의 모색과 변화를 꾀하는 중대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또한 우리가 새로운 백 년을 맞이하며 직면한 시대적 과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4년마다 치러지는 선거로 단기적 성과주의에 집착해 지역발전의 백년대계가 불가능해졌다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습니다.

민선 단체장이 선출된 지 30년이 흘렀고, 8명의 민선 군수가 저마다 지역의 현안을 추진하며 시책사업에 집중했습니다. 역대 군수들은 지역발전의 기초를 닦고, 고질적 민원을 해결하고, 기념비적 사업을 통해 새로운 화순의 변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4년, 또는 8년의 임기 중 추진했던 일들이 연속사업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중단되면서 발생한 행정력의 낭비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수립과 결정에 광범위한 군민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즉, 군민참여형 거버넌스를 작동시켜 구조적으로 단기적·보여주기식 성과주의의 폐해를 줄여가야 할 것입니다.

화순의 주인은 6만 화순군민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여럿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호흡을 준비할 때입니다. 다소 늦었으나, 개청 100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새로운 백 년 화순 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지나온 화순 100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을 평가해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모멘텀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큰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새로이 출발하는 화순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문행주
전 전남도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