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를 편찬하다
『박현채 평전』 9장 외골수 지식인, 고난 끝에 날개를 달다
화순저널입력 : 2022. 02. 18(금) 19:28
민족민주운동을 바탕으로 한
한국 현대사 집필



박현채는 1992년 4월 자신의 이름으로 도서출판 소나무에서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를 편찬했다. 리영희, 송건호, 강만길 등이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한 각종 저술을 쏟아내고 있을 때, 박현채도 소장 연구가들을 동원하여 민족주의적⋅진보적 시각에서 현대사를 집필⋅편찬한 것이다. ‘1945~1991: 고난과 희망의 민족사’라는 부제를 붙여 편찬한 이 책은 변혁기의 ‘청년을 위한’ 교재로 마련되었다. 책은 발행한 지 1년 만에 4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우선 책의 목차를 살펴보자.

시작하는 말: 변혁 이론의 현실과 한국 현대사 연구

제1부 해방과 분단
    제1장 전후 미소의 세계 전략과 민족 분단(김혜진)
    제2장 미군정과 분단국가의 형성(류상영)
    제3장 해방 후 사회운동과 미국(양동주)

제2부 한국전쟁과 종속적 자본축적(1950년대)
    제1장 한국전쟁의 구조: 기원⋅원인⋅영향(박명림)
    제2장 50년대 국가 정책과 자본축적(공제욱)
    제3장 민족⋅민주 혁명, 4⋅19(김동춘)

제3부 종속 경제와 군사 파시즘(1960~1970년대)
    제1장 미국의 동북아 정책과 한국 사회(김광덕)
    제2장 종속적 자본축적와 그 귀결(임휘철)
    제3장 일본 독점자본의 한국 진출(전창환)

제4부 신식민지 파시즘과 5공화국(1980년대)
    제1장 광주민중항쟁(김창진, 이광일)
    제2장 80년대 한국경제(정건화)

제5부 노동운동의 고양과 6공화국
    제1장 6공화국의 정치체제(고성국)
    제2장 6공화국의 경제정책(정태인)

맺음말: 현대사와 민족민주운동(박현채)


박현채가 이 책을 편찬할 때는 구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가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크게 좌절하여 심리적 충격으로 병이 도진 것처럼 평하는 논자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자신이 긴 세월 동안 이념적 지주로 여겼던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는 물론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식 자본주의가 파생한 제국주의의 탐욕, 정경 유착, 신자유주의 시장 질서,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구조, 물질 만능주의로 인한 인간성의 황폐화 등을 지켜보면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지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탈린식의 소련, 모택동식의 중국, 김일성식의 북한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실상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현채가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의 머리말로 집필한 「변혁 이론의 현실과 한국 현대사 연구」에는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운동과 이론의 이러한 침잠의 직접적인 계기는 사회주의의 몰락이다. 어떤 형태로든 운동과 이론의 현실적인 모델이자 이론의 근거가 되어왔던 현존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그로 인해 사회주의 이론이 완전히 무력화됨으로써 남한 사회의 지배 세력과 이데올로그들은 그동안 상당히 몰려 있었던 수세적 국면에서 벗어나서, 동요하는 사회체제를 다시 확고하게 장악하고 변혁 운동의 제 세력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생각지도 않은 호기를 잡은 것이다. 또한 이는 통일 문제에도 남한의 지배 권력이 역으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박현채, 「시작하는 말: 변혁 이론의 현실과 한국 현대사 연구」,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소나무, 1992, 12~13쪽


박현채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극대화될 것을 오히려 우려했다. 말하자면 그는 현실 사회주의 몰락에 비통해한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자본주의 체제의 횡포와 모순이 극대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극우적 이데올로그들이 반격을 펼칠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설사 과거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현재와 같이 자본주의적 질서에 편입되어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계속 모색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이 과거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방식의 운동 법칙을 답습한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결국 어느 시점엔가는 자본의 모순이 전면적으로 폭발하는 계기가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일시적으로 후퇴했다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다시 대두하는 것을 의미한다.

- 박현채, 「시작하는 말: 변혁 이론의 현실과 한국 현대사 연구」,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소나무, 1992, 13쪽


박현채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이라고 표현했으나 실제로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0년의 세계적인 금융 위기와 2011년 ‘시위대’의 월가 점령 등에서 볼 수 있듯이, ‘99퍼센트 대 1퍼센트’의 대결 양상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다만 “사회주의가 일시적으로 후퇴했다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다시 대두”하게 될지, 아니면 ‘제3의 길’을 찾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박현채는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자본의 또 다른 위력을 예견하면서, 변혁 운동과 변혁 이론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다음과 같이 답한다.

먼저, 자본의 세계적 차원에서의 운동 논리에 대한 해명이 여러 각도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반적 위기론’을 넘어서는 자본의 역동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현재의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자본의 운동이 어떤 형태와 법칙성을 취하는가? 그것은 과거의 운동과 본질적인 차이점을 취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명을 통해 전체적으로 자본주의화되어 재편되고 있는 세계 질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사회주의 와해의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규명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단편적인 진단을 넘어서서 좀더 근본적인 원인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몰락상을 보이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의 미래를 더욱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 박현채, 「시작하는 말: 변혁 이론의 현실과 한국 현대사 연구」,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소나무, 1992, 17~18쪽


한편 맺음말인 「현대사와 민족민주운동」에서는 박현채의 현대사 인식을 좀더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중적 민족주의가 주류가 되었다는 색다른 주장을 펼친다.

현대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민중적 민족주의가 주류를 이룬 역사적 시기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역사에서 민족적 자주가 실현되지 못하고 그것이 식민지이건 반식민지이건 민족적 생존이 어느 정도 제약되고 있었던, 그래서 우리는 자본제화를 식민지 종속 과정에서 이룩할 수밖에 없었고, 그 형태는 이른바 자본주의 발전에서 식민지⋅반식민지 종속형이었다. 일본 자본의 대한 진출의 과정이었던 한국의 자본제화 과정은 한국에서 일본 자본의 운동 양식에 의해 단초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었다.

- 박현채, 「맺음말: 현대사와 민족민주은동」,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소나무, 1992, 453쪽


민중적 민족주의가 주류가 되고서도 “민족적 자주”가 되지 못한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규명한 박현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민중의 전진을 위해서는 민족민주운동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사구체에서의 기본 모순과 민족 모순이 민족민주운동에서 하나로 결합된다고 본 것이다. 즉 식민지 시기 민중적 민족주의의 역할처럼, 민족민주운동이 동시대에 반공 논리를 깨면서 민중의 요구를 받아 안아야 한다고 보았다.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화순저널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