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카르페 디엠!
인생은 지금 Now or Never - 다비드 칼리
화순저널입력 : 2021. 05. 17(월) 07:51
일일이 이유가 필요해? 그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고. 나랑 이 순간을 살고 싶지 않아? 내 인생은 이미 여기 있는걸.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 지금도 흘러가고 있잖아. 가자! …아니, 오늘이야. 인생은 지금이라니까. <인생은 지금> 중에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에서 존 키팅 선생은 학생들과의 문답에서 이렇게 말한다.

“거둬라 그대의 장미 봉오리들을, 그대가 할 수 있을 때” 그 의미에 해당하는 라틴어 용어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젊은이들이여, …여러분은 들리는가, 이 소리가? 카르페 카르페 카르페 디엠. 오늘을 잡아라 소년들이여. 만들어라 여러분의 인생을 독특하게. …우리는 시가 아름답기 때문에 그것을 읽고 쓰지 않는다. 우리가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쓴다. …의학 법률 사업 기술 이것들은 숭고한 추구의 대상들이고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 그러나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것들은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목적이다. …대답은…, 네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인생은 너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 힘찬 연극은 계속되고 너는 한 편의 시로 바쳐질지 모른다는 것, 힘찬 연극은 계속되고… 여러분의 시는 어떤 것일까?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the latin term for that sentiment is Carpe Diem. …lads…, You hear it?: Carpe. Carpe. 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We don’t read and poetry because it’s cute, but because we are members of the human race. …Medicine, Law, business, engineering, these are noble pursuits and necessary to sustain life. But poetry, beauty, romance, love, these are what we stay alive for. …The answer…, that you are here. That life exists, an identity. That the powerful play goes on, and you may contribute a verse. That the powerful play goes on… What will your verse be?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서구의 역사를 존재를 망각(Seinsvergessenheit)하고 오직 존재자(Seinde)를 탐닉해온 역사라고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의 퓌지스같은 시원을 상실하고 현전의 존재자들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온, ‘존재론적인 차이’를 은폐한 왜곡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언어도 로고스의 원래적인 모습을 상실하고 언어 자신은 정작 ‘존재자를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언어이며, ‘공공성의 독재아래에’ 유폐된 처지로 놓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상은 흔히 본래성보다는 비본래성으로 퇴락한다. 우리는 습성적으로 지껄임(Gerede), 호기심(Neugier), 애매성(Zweideutigkeit)이라는 삶의 방식이 지배하는 비본래성(非本來性, Uneigentlichkeit)의 차원에 즉 그저 세인(世人, das man)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타인과 무책임한 대중의 시류에 부유하며 하루를 영위한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존재를 경험케 하는 언어는 곧 시어(詩語)라고 역설한다. 시는 존재개현을 가능하게 하는 원초적인 로고스이자 ‘하늘의 메아리’이다. ‘사방세계’(하늘 땅 신 인간)와 사물을 불러일으켜 그것들을 그 자체로 현성케 하고 현존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언어이다. 시인은 ‘신의 성스러운 사제’로서 ‘궁핍한 시대’의 통속적 삶이 망각해 버린 존재를 불러 우리를 ‘존재의 이웃’(der Nachbar des Seins)으로 초대하는 예언자이자 전령이며 태양빛을 받아 캄캄한 지상에 전달하는 ‘달’과도 같다. 시작(詩作)이란 언어로 건립하는 존재이다. 존재는 시적인 언어에 거주한다. 그리하여 ‘언어는 존재의 집(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이다.

<인생은 지금(Now or Never)>은 아주 조그마한 그림책이다. 나이 들어 퇴직한 남편은 그 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 미뤄온 여러 가지 생의 중요한 일들을 실현해보고자 한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고자 하고, 외국어를 배우고 싶고, 악기를 새롭게 익혀 연주하고 싶다. 호수로 밤낚시를 가서 밤하늘을 보며 그 무한성을 외경하고자 하며 요리를 배우고자 한다. 종일 풀밭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우두커니 치어다보고 싶고 또 강물에 무작정 뛰어들어 아내를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아내의 반응은 영 시원찮다. 여행을 봄으로 미루자거나 언어감각이 없거나 음악에 소질이 없거나 류머티즘이나 허리가 부실해서 혹은 청소를 지금 해야 하는 이유 등으로 남편의 제안을 미루거나 거절한다. 이에 남편이 소리친다. “아니, 오늘이야. 인생은 지금이라니까”

<인생은 지금>은 우리의 삶이 경제적인 활동에만 가치를 느끼며 오직 그것에만 몰입하면서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외면하며 오늘을 소진하고 있지는 않는지 혹은 저 아내처럼 일상의 노예로 살면서 오늘의 인생을 자꾸 불확실한 미래로 유보하고 있진 않는지, 작은 성찰을 전하는 책이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의 유한성을 바라보며 오늘 여기에, 우리의 삶이 한 편의 시(詩)로 바쳐져야 한다면, 그 시는 어떤 것일까? 오, 카르페 디엠!

<김다록 - 자유기고가>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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