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출판사 통계를 보면 도리어 여름과 겨울에 독자들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지난 여름 살찌우지 못했던 마음의 살을 겨울에 찌워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기억에 남는 문학기행을 소개할까 한다.

책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글과 글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 생각되기에 그렇다.

신문기사와 역사책에서만 접하던 ‘여순사건’. 아마도 경험 여부는 공감대가 아닐까 싶다. 시대를 회고하며 역사를 알아가기 안성맞춤일 것 같아 소설 <태백산맥>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단권으로 된 책만 읽다 보니 작가의 긴 호흡을 따라가기 역부족이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태백산맥> 1권을 아침, 저녁으로 읽었다. 이해되지 않을 때는 아침에 읽었던 부분을 저녁에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갔다. 완독 후 다음 책 2권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1권만 3번, 2권을 읽어가는 중 다시 1권을 읽다가 배경 지식이 약해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아가게 되었다.

태백산맥 북콘서트 : 조정래 작가와 임헌영 문학평론가의 대담

백문이 불여일견.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북콘서트와 문학기행에 다녀왔다. 태백산맥 북콘서트는 10월 28(토) 오후 2시에 ‘민족 분단 그리고 태백산맥’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행사는 사전예약으로 진행됐다.

북콘서트는 한양대학교 유성호 교수와 조선대학교 이동순 교수의 진행으로 조정래 작가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문학평론가가 대담형식으로 태백산맥을 10권을 모두 필사한 이들과 전국에서 모인 애독자 300여 명이 깊이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아내이자 문학적 동지인 김초혜 시인도 함께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 대해 김 원 건축가가 설명하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반기던 것은 문학관을 건축한 이의 염원이 담긴 글이 벽면을 메웠다. 김원 건축가는 건축으로 소설 태백산맥을 말했다. 건물에 건축가의 이름을 남기는 것은 보기 드문 일례라며 정중히 제안에 거절했다고 했다. 나중에 이 건물을 누가 지었는지 후대 사람들이 궁금해할 때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하자 마음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태백산맥 문학관 안을 들어가 보니 조정래 작가가 어떤 상황에서 원고를 써갔는지를 알 수 있었다.

‘4년 간의 준비’, ‘6년 간의 집필’. 1983년 7월에 시작되어 1989년 10월에 끝이 났다. ‘황홀한 글감옥’에서 나온 작가의 수척해진 사진을 보니 그간의 세월이 느껴졌다.

대하소설을 쓰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중노동이리라. ​왜 하얀 무명옷을 즐겨 입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글을 쓸 때 사람을 부르던 종까지 맥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보성여관’. 소설 속에서는 ‘남도여관’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조정래 작가와 떠나는 특별한 문학기행은 10월 29일(일) 오전 10시에 소설 속에 장소를 함께 탐방했다. 현 부자네 집, 소화의 집, 중도방죽, 보성여관, 조정래 작가 기념조형물을 돌며 소설 속 장소를 탐방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겪어왔던 이에게 듣는 대한민국 근대사였다. 현 부자네 집 입구에서 만난 조정래 작가는 상상 속 모습과는 달리 양장 차림이었다. 김구 선생과 김일성 이야기,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여운형 이야기에서부터 지금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일제의 수탈이 벌교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지형과 근거를 제시하며 소설 속 인물들에 차츰 스며들어갔다.

​금세 이야기꾼인 작가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부분인 현 부자네 집은 박씨 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 기와를 얹고 담장이 있는 한옥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대지주 계층의 저택으로 ‘솟을대문’이 있다.

​유리 창문이 달린 대문채의 2층 누마루에 앉아 중도방죽과 먼 곳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비슷한 시대의 건축물은 전남 영광군에 있는 매간당 고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전 코스가 끝나고 나서 ‘중도방죽’으로 향했다. 승용차를 타면서 지났던 풍광과는 달랐다. 고속버스의 높이로 저 멀리 너른 중도방죽과 진트재까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조정래 작가는 보성군에 많이 안타까워했다. 이 갈대와 경치를 살려 자연을 보전해달라고 요구했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중도방죽 앞은 큰 도로가 나게 되었다고 했다. 꼬막 조형물 앞, 그의 설명으로 이곳에 대해 깊은 이해를 더 할 수 있었다.

또한 작가는 <태백산맥>에서 화순 동복면 독상리에서 나고 자란 박현채 선생을 ‘소년 빨치산’ 조원제로 그려냈다. 백아산과 지리산 등 그의 활동 무대를 박 선생과 동행 취재한 후 현실감 넘치는 문장으로 묘사해내기도 했다.

인물도 이야기도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손글씨로 인물 소개와 줄거리를 정리하다 보니 작가의 글 호흡에 함께 어렴풋이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직접 와서 보니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와 독자가 책과 역사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이었기에.

방방곡곡 김민지 문화평론가

* 네이버 블로그(mjmisskorea) ‘애정이 넘치는 민지씨’에서도 볼 수 있다.
* 방방곡곡은 다양한 책과 문화 속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