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자’와 쫓기는 자.

빨리 좀 가자!
중요한 계약 때문에 출장을 가는 그. 두 대의 차량만이 교행할 수 있는 도로를 달리던 그는 느리게 가는 트럭에 막혀 속도를 높이지 못한다. 굽이돌고 거슬러 가야 하는 길. 마주 오는 차도 지나쳐 가는 차도 없는 외딴 길. 그는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지만, 거대한 몸집을 가진 트럭은 좀체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약속 시간은 원망스럽게도 시시각각 다가오고, 그는 차츰 안절부절 초조해진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진 그는 급기야 도전한다. 용감해지려 한다.

앞서가는 자는 ‘쫓기는 자’인가.

추월을 시도한다. 중앙선을 넘어 힘껏 발돋움하는 그는 위험을 감수한 무모한 도전임을 안다.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그는 감행한다. 세상 모든 위험에 저항하듯 거침없이 속도를 높이는 그. 그러나 트럭은 교묘한 주행으로 도로를 점령해 버린다. 그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연기를 내뿜으며 영웅처럼 고적을 울리며 가는 트럭.
저 트럭, 미쳤어! 나를 죽이려고 해!
트럭을 향해 한심한 푸념을 뇌까리며 몹시 우울해진다. 저 미치광이! 다시금 기회를 엿본다. 그의 차는 빠르다! 그는 자신의 속도를 믿는다.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중요한 계약은 물거품이 되고, 암담한 미래를 떠올리면서 그는 끔찍해진다. 앞서가야 하는 이유는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추월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는 다시 한 번 힘을 내어본다.

‘쫓는 자’가 묻는 ‘쫓기는 자’의 비애

그의 속도는 맹렬하고 트럭은 단호하다. 굉장한 속도를 가진 그의 차와 거대한 트럭이 함께 달리기에는 너무나 비좁은 도로, 카메라는 그들의 질주를 목가적인 풍경으로 부감하는 한편, 백미러와 사이드미러와 자동차 번호판을 끊임없이 교란한다. 그것은 카메라의 농간. 강박증적인 혼란을 부추기면서 불가항력을 인식시키는 속도의 경전. 그는 조금씩 깨닫게 된다. 지금 닥쳐오는 문제는 여지없는 생사여탈인가. 틈을 엿보고 달려들면 여지없이 부풀린 몸집으로 길을 차단해버리는 트럭에 차츰 지쳐가는 그. 도전하지만 번번이 좌절당한다. 그러나 도발의 결과가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운지 알지만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트럭은 번번이 그를 위험천만한 위기에 빠뜨린다. 그는 마침내 타협을 시도한다. 불행과 영원히 비껴갈 수 있다면 이 순간을 유예해도 좋으리라. 그는 좌절된 추월의 비애를 곱씹으며 휴게소로 빠진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트럭에게 저항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오직 달아나거나 숨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트럭 또한 휴게소에 정차하는 게 아닌가. 그는 운전자를 찾아 따지려 하지만 언제나 묘연한 존재.무지막지하면서도 질문도 변명도 하지 않는 존재. 카메라는 식당에 들어선 그의 모습과 의자조차 핸드헬드로 굴절시킨다. 비틀린 착시의 세계. 그는 두통약을 찾는다. 이미 시간 맞춰 가기는 틀렸어.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생명의 위협을 받을 만큼 트럭에게 잘못한 것일까, 경찰에 신고하면 나의 말을 믿어 줄까? 그리하여 그는 자위한다. 그래야 늦은 약속일지라도 모종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듯이 체념으로 새롭게 시작하려는 그. 짧은 휴식으로 먼 길을 가늠하면서 다시 출발하는 그. 그는 이제 여유를 되찾고서 여행을 하려고 한다. 천천히, 그래, 시간은 얼마든지 많아. 그는 가까스로 마음을 수습한다. 그런데 또 트럭이 거기에 있다. 그가 겪은 거대한 실패의 덩어리인 양…… 트럭이, 거기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어! 끝난 게 아니었어!
그는 결국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다. 그런데 돌연, 트럭은 그를 향해 돌진해 온다. 아아아, 저 미친놈! 그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모면한다. 불가항력을 자각하는 그. 그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저 끔찍한 트럭과 정면승부를 결심한다.

‘쫓는 자’와 또 쫓는 자.

트럭은 누구인가. 기어를 현란하게 바꾸는 손과 잔인한 발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권력. 희망을 쉽사리 내주지 않겠다며 결사적으로 길을 차단하는 존재. 트럭이라는 기계는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괴물은 아닐 것인데, 과연 왜? 그는 숱한 과오를 되씹듯 눈을 끔벅이고 자조적인 독백을 하며, 어찌할 수 없이 욕설을 터뜨리지만, 그렇지만 모르겠다. 왜 하필이면 나인가?
상황은 늘 바뀌기 마련이다. 기다리면 꼭 때가 온다고 믿어야 한다. 반전이다. 그는 호시탐탐 트럭의 기세등등한 힘이 민주적이길 바라면서 기다린다. 아직 시간은 있다. 비록 늦기는 했으나 계약자가 너그러운 사람이길 바란다. 그리하여 그는 확신한다. 기회는 있다. 속도와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그런데 상황은 또 순식간에 묘연해진다. 믿을 게 없어지는 순간은 필연적인 모양이다. 언덕을 올라가는데 차의 엔진소리가 이상하다. 오르막길인데도 속도를 컨트롤 할 수가 없다. 트럭과의 전쟁으로 인해 속도를 무리하게 사용했던 걸까. 하지만 지금은 속도만이 구원인데, 그는 하소연한다.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애원한다. 그리하여 가까스로 언덕을 넘어가지만 금세 트럭에게 후미를 잡히고 만다. 엔진도 거의 망가진 듯한데,
충돌!
직전, 충돌은 피했지만, 그는 결국 낭떠러지에 처박히고 만다. 끝났다! 모든 소망이 모든 운명의 귀결이 될 수는 없지만, 이런 걸 비극이라고 한다. 그는 절망하면서 끝없는 미지의 낭떠러지로 추락하려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그 순간, 삶이 그렇듯 드라마는 늘 여분의 갈등을 부추긴다. 들러붙을 듯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트럭은 지칠 줄 모르고 군림하려 든다. 그토록 절대적인 힘으로 그를 향해 돌진한다. 낭떠러지를 모르는 트럭. 좌초의 역사를 경험해보지 못한 힘의 숭배자는 이제 그에게 최후의 선고를 내리듯 덮친다. 길고 긴, 쫓고 쫓기는 긴장 다음의 허무, 그리고 적막.

‘쫓기는 자’가 묻는 ‘쫓는 자’의 변명

폭발!
왜? 라고 숱하게 물었지만 아무런 증언도 해주지 않는 트럭. 그것은 결국 외람된 먼지와 함께 사라진다. 악몽이다. 꿈은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또한 의문으로 가득 채운다. 그는 이제 막 침대에서 깨어난 듯한 얼굴이다. 해가 저무는 강과 푸른 언덕으로 번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아름답다는 건 고통에 대한 응답이었을까.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얼굴이다. 쫓겨야 할 이유 없이, 쫓아야 할 이유도 없이 공포는 강렬했지만, 그는 두려움의 최후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거대한 트럭의 공포에 대해 말한다.
트럭이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미친 이야기를 사람들은 믿지 않을 거야.
그 또한 이 미친 상황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강박증과 피해망상으로 인한 환각은 아니었을까. 그는 곰곰 생각해보는데, 노을은 터무니없이 아름답기만 하고 또한 적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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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한 젊은 청년이 영화사를 돌아다니며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고작 24살의 나이. 무명인 이 청년을 영화사들은 당연히 거절했다. 하지만 청년은 기회를 얻었다. 턱없이 짧은 제작 기간과 적은 비용은 무리라고 했지만, 청년은 단 12일 만에 영화를 완성했다. 스튜디오도 없이, 단 두 대의 차량인 승용차와 트럭. 배우도 여러 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연배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사가 두세 마디가 넘지 않는 단역 배우들이면 충분했다. 이 영화 한 편으로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이름을 미국, 그리고 전 세계에 알렸다. 그렇게 스필버그라는 신화가 시작됐던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데니스 웨버, 재클린 스콧, 에디 파이어스톤

<글쓴이 : 채어린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