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찰] 그걸 이해한 사람이 있나요?
- 카우보이의 노래 (2018, 에단 코엔, 조엘 코엔)
화순저널입력 : 2022. 08. 05(금) 12:52
나는 지금 책 한 권을 읽고 난 후의 먹먹한 공허와 마주한 기분이야. 아주 오래된 책, 낡아서 진부할 수도 있지만 새삼 고전의 묵은내가 싱그러운 향기마저 뿜어내는 이야기. 등장인물은 수없이 많아서 전형화할 수 없지만 이미 우리 자신인 인물들의 지난한 서사를 좇다 보면 돌연한 질문을 받게 되는데,

그걸 이해한 사람이 있나요?

이 질문을 받아든 나는 당신에게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어. 당신 또한 의아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게 될까. 이런 뚱딴지 같은 질문에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도 같아서 나는 당신에게 이 글을 써서 보내기로 했지.

*

먼지 날리는 황야를 말을 타고 건너온 사나이가 있어. “아침공기를 뚫고 흘러온" 그의 이름은 버스터 스크럭스. 자신을 ‘샌사바의 노래하는 새’로 소개하는 이 생뚱맞은 무법자. 총을 뽑는 순간만큼은 냉정하지만 유머와 미소를 잃지 않는 냉혈한. 그는 기타를 둘러메고 노래하는 걸 즐기는데,

온종일 척박한 땅과 마주했다네.
물 한 모금 맛보지 못하고
오랜 친구 댄과 나는 목이 탔다네.
영혼조차 물을 달라고 외쳤다네.

여러 이름과 별명과 호칭과 예명을 가진, 현상수배자이면서 인간혐오자는 아닌 그.
포커를 할 때 비록 속임수를 쓰더라도, 그건 그냥 인간 본성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
그 때문에 분노하고 실망하는 건 더 나은 걸 기대하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웃는 그.
신의 뜻을 거역한, 허풍쟁이인 그.
아메리카 개척시대의 서부에서는 어찌하다 보면 일이 꼬이기도 해서 결투를 해야 하지만, 총을 거두면서 노래를 떠올리는 그.
그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그.
자신을 ‘죽음의 전조’라 일컬으며 감미로운 하모니카를 부르는 그.
그의 모자에 구멍이 뚫리고, 마침내 또 다른 그가 부르는 노래를 환청으로 들어야 하는 그.
“지금 어딘가에 또 한 명의 아이가 있다. 노래와 총질을 배우며 전설이 되길 꿈꾸는 아이!”

나의 당신인 그.
그와 가까운 그.
그도 나도 아니면서 그인 그.

*

황야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은행에는 <투컴캐라 제1연방 신탁&공증사무소>라는 간판이 걸려 있어. 그 앞에 모래바람과 맞서 있는 사나이는 은행을 바라보고 있어. 은행 앞마당의 우물에는 두레박이 인기척처럼 흔들리고…….
마침내 사나이는 결심한 듯이 한 발 한 발 나아가지. 은행 앞으로, 뚜벅뚜벅 지루하게 나아가지. 두레박은 사나이의 심박처럼 흔들거리고, 은행에 들어선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창구를 향해 걸어가지. 근엄한 구둣발 소리가 마룻장에 울려 퍼지고, 수다스러운 은행원에게 사나이는 말하지. 현금을 내놔! 총을 들이대자 놀란 은행원은 현금을 챙기기 위해 머리를 숙이는데, 빵빵! 예기치 않는 역습에 혼비백산한 사나이는 서랍의 현금을 챙기고서 도주하지. 하지만 은행원은 사나이보다 훨씬 교활했고 경험이 많았지.

황량한 사막의 나무에 목이 매달린 그.
뉴멕시코의 여느 재판처럼 공정한 법 집행으로 목을 매달린 그.
마지막 말을 묻지만 은행원은 공정하게 싸우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그.
그의 말을 차지하겠다는 그(들)에게 아무에게도 주고 싶지 않다는 그.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에 관통당하고 살육당하는 그(들)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그.
홀연히 사라져버린, 자신을 구해주지 않고 떠나버린 인디언들을 황당하게 바라보는 그.
여전히 밧줄에 매달려, 아슬아슬 곡예하는 그.
말은 풀을 뜯기 위해 발을 떼고, 밧줄은 생명선 밖으로 그의 목을 끌고 가는, 곡예 하는 그.
저 멀리 황야를 건너가는 소몰이꾼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그.
소몰이꾼과 동행하지만 소도둑이었던 소몰이꾼은 도주하고 소도둑으로 몰려 다시 목에 밧줄이 매이는 그.
집행 직전에 인생 마지막으로 좋은 감정을 품게 해준 소녀, 그 미소를 본 듯 만 듯한 그.
덜커덩!
“자비라는 것은 본디 강요되는 것이 아니요.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고마운 비와 같습니다.”

나의 당신인 그.
그와 가까운 그.
그도 나도 아니면서 그인 그.

*

세상 어디든 마차를 몰고 갈 마부인 그.
그와 함께 가야 하지만 영원히 정답을 말해줄 수 없는 그.
장막이면서 세상의 모든 길을 거슬러야 하는 바퀴가 삶이면서 고향인 그.
길을 달릴 때는 마차, 온갖 장식과 장막을 펼치면 가설극장이 되는 그.
건장하지만 한없이 비굴해 보이는 마부인 그.
장막 속에서 어지러운 눈을 가까스로 뜨고 있는 그.
머리와 몸통뿐인 토르소……인 그.
장막이 걷히고 등장하면서 찬찬한 눈으로 모여든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는 그.
“고대에서 온 여행자를 만났다네…….”
무표정한 비장함만이 생애인 토르소, 그러니까 인간인 그.
“이제 우리의 잔치는 끝났다. 모두 정령이었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노라!”
호소하고 설득하고 웅변하고…… 말로써 모든 삶을 살아가는 그.
그가 떠먹여 주는 음식. 그의 야만적인 배설을 함께하는 그.
그리고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그와 그.
늘 그렇듯 모닥불은 타오르고 서로의 남루를 외면해야 하는 그와 그.
“단 하루! 날개 잃은 개똥지빠귀의 여로!”를 외치는 그.
“운명도 세상 사람들의 눈도 나를 천시할 때, 나 홀로 버림받은 신세를 한탄할 때, 귀 없는 하늘에다 헛되이 울부짖으며 내 몸을 돌아보고 내 운명을 저주하나니!”라고 그가 들끓을 때, 등 돌리는 그.
“이제 우리의 잔치는 끝났다! 내 일러두었듯이 우리의 배우들은 모두 정령이었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도다! 뼈대 없는 구조와 같은 이 환영은 구름 높이 솟은 탑들, 호화로운 궁정들…….”라고 외치는 토르소, 그 너머로 눈길을 돌리는 그.
<천재 닭> <암산하는 닭>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돈을 벌어주는 암탉을 발견하는 그.
암탉을 구입하고, 어느 기슭의 시냇물에 바윗덩이를 던져버리는 그.
쓸모의 범위는 그렇듯 마차와 바깥인 그.
토르소가 치워진 마차가 점점 어두워지도록 멀어질 때, “그렇게 그들은 계속해서 절정을 향해 여행했고…….”라고 적는 또 다른 그.

나의 당신인 그.
그와 가까운 그.
그도 나도 아니면서 그인 그.

*

만년설이 쌓인 알래스카. 산은 우련하여 외경을 자아내고, 능선으로는 영롱한 해가 떠오르고, 구름은 이제 막 피어난 듯 해맑고, 초원의 풀밭은 영원히 푸를 듯이 반짝이고, 꽃들은 축복처럼 아름다운 어느 신성의 땅이 있어. 시냇물에 발을 담근 사슴은 한가로이 물을 마시고, 올빼미가 알을 품는 삼나무 숲 너머 장엄하게 펼쳐진 풍경에는 사람의 흔적도 시간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적막한데…….
마침내, 기어코, 인간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거야. 한 노인이 다가오고 있어. 그런데 그의 노래는 왠지 처연하기만 해. 꼭 그렇게만 들려. 새들의 노래라기엔 남루와 쇳소리가 섞여서 꼭 그런 거 같아.

그대 머리카락은 사랑스러운 은빛으로 반짝이고
이마는 온통 근심으로 주름졌네.
그대 사랑스러운 손가락에 입 맞추리라.
나를 위해 수고한 그 손가락.
오, 신이여, 축복을 내려주소서!
그리고 지켜주소서! 내 사랑하는 그대를!

<럭키>라는 당나귀와 함께 행운을 찾아다니는 그.
시냇물에 손과 얼굴을 씻는데, 모래알 속에서 찾아낸 금빛으로 열망에 빠지는 그.
신의 계시라도 받은 양 신성과 모호로 얼룩지는 얼굴로 다시 일어서는 그.
그토록 아름답던 초원을 향해 삽과 괭이질을 시작하는 그.
삽과 괭이질은 지루하고 구덩이가 점점점 늘어가지만 쉽사리 내주지 않는 금빛에도 굴하지 않는 그.
넷 일곱 열둘 다섯 셋 둘……. 채취된 금빛의 숫자를 헤아리며 탄식하고 열망으로 들끓는 그.
“이봐, 금광양반! 내가 간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바락바락 외치는 그.
어둠 가운데에서도 하늘의 별빛처럼 금빛이 반짝이는 초원을 꿈꾸는 그.
삽과 괭이로 온통 파헤치는. 구덩이는 늘어가고 더 깊어져가고 더욱 더 발광하는 그.
마침내, 아아아 발견하는 자의 영광으로 환호하는 그.
그런데, 그의 몸을 뒤덮는 또 다른 젊은 그림자인 그.
지리멸렬한 그를 쏴 죽이고 느긋하게 담배를 말아 피우는, 초원이 더없이 아름다운 젊은 그림자인 그.
하지만 구덩이로 뛰어든 젊은 그림자인 그를 처벌해버리는 그.
총알이 몸통을 관통해버린 젊은 그림자인 그를 구덩이에 묻어버리는 그,
한 덩어리의 금빛을 안고서, 다행히 급소를 비켜나간 총알 난 몸통의 피를 씻는 그.
신의 가호에 응답하듯이 처연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
적막을 회복한 기슭에 사슴이 내려와 구덩이 앞에서 머뭇거리고, 올빼미는 잃어버린 알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물고기는 언제나처럼 유영하지만,

나의 당신인 그.
그와 가까운 그.
그도 나도 아니면서 그인 그.

*

폐병을 앓고 있는, 고집불통이며 하는 일마다 실패한 오빠를 따라 먼 길을 가야 하는 그(녀).
결혼이 예약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나는, 머나먼 곳에 대한 막연함에도 딱히 다른 예정을 할 수도 없어서 무작정 따라야 하는 그(녀).

마차 행렬은 황야를 향해 나아가고, 흩날리는 먼지와 이상한 울음소리로 가득해서 두려움으로 떨리지만 내색할 수도 없는 그(녀).
폐병을 앓는 오빠는 끝내 여정 중에 사망하고 묘비도 남길 수 없는 애도를 겪는 그(녀).
‘피어스 대통령’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오빠의 강아지만 남은 그(녀).
강아지의 소리가 시끄럽다는 탄원에 행렬로부터 추방해야 하는 슬픔을 당하는 그(녀).
이제 완벽하게 혈혈단신이 된 그(녀).
황야의 밤에도 모닥불은 타오르고, 음악이 있고, 춤을 추고…… 오직 꿈꾸는 것만이 생존의 힘인 그(녀).
그(녀)의 여정에 닥친 온갖 난관을 상담했던 행렬의 감독인 그.
“그곳에서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는 거죠?”
아주 정중한 태도로, 소년 같은 수줍음으로 그(녀)에게 묻는 그.
물음에 어리둥절한 눈으로 대꾸하는 그(녀).
가끔은 기적 같은 사랑이 있어서…… 청혼을 하고, 하느님의 뜻을 묻는 그(녀).
망망대해와 같은 황야 어딘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1872 정부보조금>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소망을 밝히는 그. 그리고 그(녀).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 그리고 그(녀).
“오직 눈앞에 있는 것만이 우리에게 확신을 주니까. (…)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면, 확실성이 부여되긴 해도 그게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드물어요.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존속하는 당위성이 있나요? 그런데도 우린 서둘러 또 다른 당위를 만들어내죠. 편리한 게 좋으니까.”라고 말하는, 말할 줄 아는 그.
그의 말을 귀담아 잘 듣는 그(녀).
하지만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고 절체절명에 빠진 그(녀).
그의 친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 듯……했던, 그러나 좌절은 조금 빠르고, 벌써 이마를 꿰뚫은 총알로 아무런 감정도 품을 수 없게 된 그(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라는 말의 바깥으로 훌쩍 떠나버린 그(녀).

나의 당신인 그.
그와 가까운 그.
그도 나도 아니면서 그인 그.

*

어두운 밤을 질주하는 마차. 정숙한 한 부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사 둘과 프랑스인이라는 노름꾼과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는 사내가 승객인 마차는 달리고 있어. 마치 하늘 끝까지 폭풍을 뚫고서라도 기어코 가 닿겠다는 듯이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있어. 아아아, 마냥 달리고만 있어.


“원주민여자와 함께 살았다오. 서로의 언어를 몰라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말이오. 서로 동지애 같은 감정으로 살았다오. 여자는 집안일을 했고, 나는 덫을 놓아 동물을 사냥했지. 여자는 난로 옆에서 옷을 짰고, 서로 대화는 없었지만 서로의 말을 했다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오. 나뭇가지의 눈꽃이 흩어지는 소리처럼 말이오. 하지만 나중에는 날 떠났소. 소리 높여 항의하는 억양과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으로. 그래서 나는 알게 됐소. ……사람은 족제비와 다름없구나!”라고 말하는 그.
일생의 관심은 인간은 완전히 다른 두 부류가 있다!라고 주장하는 그.
‘운 좋은 놈과 아닌 놈’이라는 두 부류를 주장하는 그.
‘강자와 약자’라는 두 부류를 주장하는 그.
‘때려눕히기 힘든 자와 힘없이 쓰러지는 자’라는 두 부류를 주장하는 그.
사냥꾼과 도회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면, 죄짓지 않는 부류와 죄짓는 부류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그.
하지만 끝내 사람은 족제비와 같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그.
폴란드 놈과 친분을 나눈 적이 있다는 프랑스식 농담으로 분위기를 머쓱하게 만든 그.
악덕과 방탕함으로 가득한 삶이었다며 비난하는 그.
삶은 그냥 삶일 뿐이었다며, 알아야 할 건 다 카드가 가르쳐주었다며 항변하는 그.
발작하는 그. 응급처방을 위해 마차를 세워야 하지만 막무가내 달리기만 하는 어둠 저편의 그.
“수확하는 사람” 혹은 영혼을 건져내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들).
<현상금 사냥꾼>인 그(들)은 마차의 지붕에 올려놓은 짐짝은 아주 대단한 현상수배범이었다며 은근히 뻐기는 그(들).
“……다 아는 얘기지만,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안달이 나서 들어요. 그 이야기를 자신과 연결 짓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죠. 이야기 속 인물이 우리 자신이면서도 우리가 아닐 때……”
중얼거리는 농담을 즐기는 듯한 그.
마침내 마차가 멈추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은 시체를 끌고 호텔로 들어가고, 황량한 벌판에 남겨진 그(들).

나의 당신인 그.
그와 가까운 그.
그도 나도 아니면서 그인 그.

*

그걸 이해한 사람이 있나요?

*

감독 :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 제임스 프랭코, 리암 니슨, 데이빗 크럼홀츠

<글쓴이 - 채어린>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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