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민족경제론인가?
『박현채 평전』 제10장 자서전 집필을 뒤로한 채 영면하다
화순저널입력 : 2022. 03. 18(금) 20:43
사후의 추모에서 이어진
기념사업들



박현채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을 때 동료와 후학들이 회갑기념논문집 두 권을 상재했다. 정윤형이 중심이 된 『민족경제론과 한국경제』는 창작과비평사에서, 안병직이 주도한 『한국경제: 쟁점과 전망』은 지식산업사에서 펴냈다. 각각의 논문집은 1965년 6월 23일 대한상공회의소 12층 강당에서 가족에게 전달되었다.

두 논문집에는 박현채가 재야 경제평론가 시절부터 연을 맺었던 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가 필생의 과제로 닦아온 민족경제론을 검토하고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와 현실을 다룬 『민족경제론과 한국경제』에는 22편의 글이 실렸다. 『한국경제: 쟁점과 전망』은 경제발전, 대외 관계, 산업경제, 재정 금융, 노동 분배 등 5개 분야로 나눠 한국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미래를 조망했다. 이대근, 김태동 등 16명의 경제학자가 참여했다.

박현채와 오랜 동학이었던 정윤형은 회갑논문집의 머리말 격인 「실천 이론으로서의 민족경제론」에서 “그의 현실 참여는 겉으로는 지식인 운동가의 그것에 한정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실천 의지는 늘 치열했고 시선은 잠시도 운동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칙을 포기하거나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어서 “특히 1980년대 중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제기하면서는 기존의 민족경제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 규정을 논리적으로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하는 난세가 대두했다. 박 교수는 몇 해 전부터 이론의 체계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 작업에 착수했지만 성과는 아직 불투명하다”면서, “박 교수의 병상으로 그 자신에 의한 작업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고, 후학들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고 썼다.

사람은 죽어 관 뚜껑을 닫은 뒤에야 제대로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박현채의 사후 그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한국사회과학연구소는 기관지 『동향과 전망』 1995년 가을호를 ‘박현채 선생 추모 특집호’로 발간했다. 이 계간지 편집위원회는 그를 추모하면서 후학들이 고인의 학업을 이을 것을 다짐한다. “앞으로 남은 살날은 우리가 박현채 선생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 그 자체다. 우리를 추스르면서 박현채 선생, 그가 사랑했던 인간, 노동 대중, 민족을 위해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정윤형은 「기리는 글」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정의는 언제나 약한 자의 편에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이러한 원초적 믿음이 그의 삶과 학문의 성격을 규정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는 늘 땀 흘려 일하는 민중의 편에 선 현실 개혁을 생각했으며, 외부의 힘에 의해 침탈을 받고 왜곡된 종속적 경제를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경제로 개편하는 것을 학문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학문적 실천의 열매가 바로 민족경제론입니다. (……) 나는 지난 40년 세월을 통해 존경할 만한 스승, 믿고 따를 만한 선배, 언제나 따뜻하게 아우르며 돌보아주는 형, 때로는 정겨운 벗으로서 박 선생을 가까이 모실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 동향과전망편집위원회, 「편집자의 글: 박현채 이사장을 추모하며」, 『동향과 전망』, 1995년 가을, 2쪽



박현채의 사후에 시작된 추모 사업은 2006년에 큰 결실을 맺는다. 2006년 ‘고 박현채 10주기 추모집⋅전집 발간위원회’가 구성되어 추모집 『아! 박현채』와 『박현채 전집』이 간행되었다. 발간위원으로 김경희⋅김금수⋅김낙중⋅김언호⋅문병란⋅박중기⋅백낙청⋅송기숙⋅이경의⋅임동규⋅박영호⋅나병식⋅문국주⋅박승옥⋅이종범⋅정건화⋅정태인⋅조희연⋅조석곤이 참여했다.

전집은 총 7권으로 제1권부터 제6권까지는 박현채가 집필한 모든 글들을 연대별로 묶었고, 제8권은 부록으로 만들었다. 특히 제7권에는 제1차 인혁당 사건 관련 자료, ‘임동규 간첩 사건’ 관련 자료, 「KBS 인물현대사」 인터뷰 녹취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전집 발간위원회는 「발간사」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발간 이유를 밝혔다.

박현채,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어떤 삶을 살았고, 과연 우리는 그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가.

박현채가 사물을 꿰뚫는 그 형형한 눈으로 이 세상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고 천안의 공원묘지에 누웠을 때, 그를 알고 그를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 앞에 어떤 수사를 넣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경제학자, 민족경제론가, 민주화운동가, 민족민주 열사, 소년 빨치산 등등 그의 삶을 표상할 듯한 여러 낱말들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딱히 들어맞는다거나 어울리지가 않았다. 그만큼 그의 삶은 어떤 단 하나의 모자만을 쓰고 유유자적하게 세상을 관조한 그런 삶이 결단코 아니었다. 박현채는 그 어떤 면류관을 씌워주는 것조차 거부하는, 기존의 상식과 상투성을 벗어나 불꽃같은 맨몸의 삶을 살다가 그리고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하던 이 강산의 흙 속에 묻혔다.

- 고 박현채 10주기 추모집⋅전집 발간위원회 엮음, 「발간사」, 『박현채 전집』 1, 해밀, 2006, 5쪽


이어서 『전집』 편찬위원들은 고인의 실천적 삶과 비전, 학문적 가치 그리고 문제제기가 과거완료형이 아닌 현재와 미래형임을 밝힌다.

1997년 국제금융 환란 이후 우리는 이제 박현채가 그야말로 다시 역사가 되는 것을, 역사로서 다시 부활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오늘의 현실은 그가 제기한 자립경제⋅민족경제⋅민중경제의 문제의식이 그냥 한순간 바람처럼 불다 사라져버리는 불임의 문제의식이 아님을 웅변해주고 있다. 식량 자급률 20퍼센트 선에서 개방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농업은 아예 멸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외자라는 이름 아래 들어온 투기자본은 한순간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땀 흘려 쌓아놓은 국부를 가볍게 빼앗아가버린다.

이 땅에서 더 이상 외국 군대의 군사기지가 확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농민들과 민중들의 절박한 요구는 무참히 짓밟혀버리고 만다. 20세기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몸서리쳐지는 21세기 오늘 우리의 이같은 풍경이야말로 자립경제와 민족경제, 민중경제의 의미를 근원에서부터 다시 되새겨보게 하는 초혼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고 박현채 10주기 추모집⋅전집 발간위원회 엮음, 「발간사」, 『박현채 전집』 1, 해밀, 2006, 8쪽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식자들 사이에서 ‘이럴 때 박현채가 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터져 나왔다. 2010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다시 민족경제론의 중요성이 논의되었다. 박현채 10주기 추모집과 전집 발간의 실무 책임을 맡았던 박승옥(현 서울시민햇빛발전소 이사장)은 2008년 「왜 지금 다시 ‘박현채’인가: 금융 위기, 식량 위기 그리고 자립경제론」에서, 사람들이 다시 박현채를 꺼내 읽는 이유를 살폈다.

문제는 이처럼 한국경제의 붕괴와 함께 닥치게 되는 끔찍한 식량 위기와 그나마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한국 사회’의 완전한 붕괴다. 사회가 복원되기 위해서는 자립과 자치의 공동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런 자립과 자치의 공동체 정신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사회가 무력할 때, 튼튼하게 존립해 있지 않을 때, 곧 바로 파시즘으로 치닫는다는 것은 역사의 경험이 웅변해주고 있다.

박현채의 목숨을 건 외침이 다시 절실히 요청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마르크스와 달리 지금 이 시점에서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는 대안으로 끊임없이, 일관되게, ‘자립경제’와 ‘자립의 공동체’를 주창했다. 그는 ‘민족경제’의 완성된 형태를 ‘자립경제’로 명확히 설정하고 있었다. 그에게 경제란 ‘경세제민’ 이었으며, 협업이었고, 평등과 분배였고, 민중의 삶의 개선이었다.

그는 ‘일국사회주의’나 ‘폐쇄경제’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민중들의 협업과 농업협동조합을 통한 식량 자립 및 그것을 중심으로 한 ‘자립경제-민중경제’만이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는 지름길이자 민주주의의 확실한 기초라는 신념이 있었다. 여느 사회주의자들과 다른 이런 농업과 협동조합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이야말로 산업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경세제민의 근본을 잃지 않았던 박현채의 남다른 모습이었다.

- 박승옥, 「왜 지금 다시 ‘박현채’인가」, 『녹색평론』, 2008년 11월~12월, 27~28쪽


이에 앞서 박현채의 후학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도 『동향과 전망』 2002년 겨울호(통권 제55호)에서 ‘한국의 산업화와 민족경제론’이라는 특집을 기획하며 민족경제론의 현재적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여기에 수록된 조석곤의 「민족경제론과 ‘국민 형성’의 과제」에는 지금의 시점에서 민족경제론의 유효한 지점들을 살피고 있다.

왜 다시 민족경제론인가?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조국을 절대 빈곤에서 구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도출된 민족경제론 논의를 세계화가 대세인 현단계에서 되살리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닌가? 한국경제는 해외시장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성장해왔고 그를 통해서 자본주의적 성취를 이루었으므로 ‘자립적 재생산구조를 갖춘 국민경제’를 지향했던 민족경제론은 이미 낡은 이론이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질문이 옳다고 하더라도 민족경제론이 지향했던 ‘경제적 민족주의와 경제적 자유’는 달성되었는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민족의 외연을 한반도로 확대하면 ‘남한’ 중심의 국민경제란 ‘국민 형성’이 실패한 반쪽의 국민경제에 지나지 않는다. 분단 상태에서 진행된 남한에서의 자본주의적 성장은 민족의 시간과 자본의 시간을 엇갈리게 했으며, 초기의 사소한 차이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큰 차이로 확대되었다. 이 간극 때문에 남한의 젊은이들은 남북 경협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그것은 민족경제론이 지향했던 한민족의 ‘국민형성’에는 치명적이다.

- 조석곤, 「민족경제론과 ‘국민 형성’의 과제」, 『동향과 전망』, 2002년 겨울, 8~9쪽


조석곤은 민족경제론이 다름의 두 가지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파한다. 첫째,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민족경제론은 민족 구성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국가의 울타리 구실을 할 수 있다. 둘째,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역학 구도 속에서 ‘민족 중심의 통일’을 이루려면 민족경제론이 필요하다. 조석곤은 세계화와 민중의 삶 사이에 거리가 멀어진 상황에서 유의미한 가능성을 가진 이론으로 민족경제론을 바라본 것이었다.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화순저널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