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成語 散策 29> 분서갱유焚書坑儒
진시황, 황권을 위해 분서갱유 일으켜
이러한 혹정이 아직도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화순저널입력 : 2022. 01. 28(금) 15:57
분서갱유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은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제를 채택한 후 스스로 황제가 되어 그 제위帝位를 자손만대에 전하려는 꿈을 꾸었다.

통치 34년 어느 날 秦始皇은 문무백관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박사 순우월이 황제에게 "은나라와 주나라처럼 천년 왕실을 유지하려면 가까운 왕족을 우대하여 왕실을 보호하도록 해야 한다."고 간곡한 진언을 했다.

이때 군현제도의 초안자이자 개혁론자인 승상 이사李斯가 "지금까지는 어지러운 천하를 통일할만한 인물이 없었으므로 군웅이 할거하여 세력을 다투었지만 이제는 천하가 통일되어 안정되었고 법률과 명령에 권위와 계통이 서서 세상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운 학식만 믿고 자기 문하에 수많은 도당을 거느리며 정부의 법률이나 문교정책을 비방하고 세력을 모으는 도당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그대로 두면 황제의 절대권을 손상시키고 훗날의 화근이 됩니다" 며. "신이 감히 아뢰오니 사민필수四民必須의 의약과 복술, 농경에 대한 글과 우리 진나라의 기록을 제외한 모든 글, 다시 말해서 시詩, 서書에서 제자백가諸子百家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적을 불태워 없애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詩, 書를 논하는 자는 그와 일가족을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엄명을 내려주십시오."라고 아뢰었다.

실로 무서운 간언이었으나 始皇帝는 귀가 솔깃하여 각지의 귀중한 문서들과 다시 만들 수 없는 귀중한 서적들을 모조리 불태우도록 명령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비위에 맞지 않는 책을 모조리 불살라버린 야만적 행위와 일치하는 반 인류 역사적 행동이었다.
초기에는 제법 영웅적으로 진나라를 일으킨 秦始皇도 늙어서는 불로장생을 꿈꾸며 신선술神仙術에 빠져 요술쟁이(방사 方士)를 많이 불러들였는데 그 중 노생盧生과 후생侯生을 특히 신뢰하고 아꼈다. 그런데 이 둘은 호사를 하며 재산이 모아지자 함양시내를 빠져나가 먼 곳으로 도망친 후 秦始皇에 대한 갖은 악담을 하고 속속들이 내막을 폭로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秦始皇은 함양성의 학자들 중 또 다른 반대파가 있을 거라며 내사를 하니 과연 조정을 비난하는 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이 중 정도가 심한 460명을 잡아다 잔인하게도 산채로 한 구덩이에 매장해버렸다. 이때 매장당한 사람 대부분이 유교儒敎를 신봉하는 학자들이였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갱유坑儒라 한다. 책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해서 분서焚書, 유교학자들을 산채로 흙구덩이에 파묻었다 해서 坑儒라 하니 이 둘을 합쳐 焚書坑儒라 한다.

이러한 혹정酷政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40년 전에는 우리나라 광주에서도 군인들이 수백 명의 시민을 죽이는 참사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에 의해 벌어졌다. 이들은 焚書坑儒를 자행한 秦始皇과 똑같은 인간말종이라 하겠다.
성길모 전 화순교육장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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