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43일 만에 윤석열이 체포되면서 내란은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요란스레 출발했던 윤석열 정부는 결국 본색을 드러내며 시대착오적인 내란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처는 너무 컸다. 지금까지 수없는 피를 흘리며 가꾸어온 민주주의가 한밤중 난데없는 쿠데타로 허물어지는 현실을 접하면서 국민은 걷잡을 수 없는 허무감과 노여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 또한 우리의 허약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하라는 역사의 시련쯤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문제는 이제부터다. 정치가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만인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다소 원론적인 존재 이유를 다시 상기해야 할 때다. 정치의 본질은 곧 민생이다.

우선 12.3쿠데타의 처리와 결과는 공수처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한 법률적 절차를 믿고 맡겨두자.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이 내란 사태에 묻혀 아무도 돌보지 못한, 무너져가는 민생경제다. 지금 우리는 21세기 들어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대를 맞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미중패권전쟁으로 세계적 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예측불허의 경제적 혼란 속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각종 보조금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앞세워 반도체공장을 비롯한 제조업을 미국 땅으로 불러들이더니, 급기야 메모리반도체의 대중 수출마저 규제하는 횡포로 인해 무역수지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곧 취임하는 트럼프는 바이든이 약속한 보조금마저 감축하겠다고 위협하며 다가올 우리의 경제위기가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지 예측할 수도 없다.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산업의 불황과 무역수지 악화로 대별되는 경제 현실은 원 달러 환율 인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2025년판 한국경제의 장기불황과 탈출을 위한 해법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제불황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노동자, 농민들이요,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서민들이야말로 경제불황의 피해가 최종 전가되는 마지막 식민지임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내란 사태가 진정되면서 정부당국자와 여야 지도자들이 앞다투어 이제는 민생경제를 살려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헤게모니가 불분명한 현실 속에서, 지금은 서민들이 일상을 살아가기가 가장 힘든 한겨울이다. 주거비에 비싼 식료품은 물론이요, 엄동설한 가스비와 전기세, 난방비까지 감당해야하는 극한의 시절이다.

민주당은 새해 예산심의에서 서민들의 민생을 위해 지역화폐 예산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충분치는 않겠지만 그래도 얼어붙은 내수시장과 특히 영세상인들의 골목상권에 마중물로서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정부담과 포퓰리즘을 앞세운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반대로 결국 무산돼 버렸다.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다. 윤석열과 기재부의 모피아들이 서민들의 팍하고 가슴 시린 삶을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이것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서산에 해 떨어지고 어둠이 짙어갈 때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쳐야 걸어지던 광덕리 상가를 한번 돌아보라!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텅 빈 가게와 임대 딱지를 바라보며 인적없는 스산한 거리를 걷노라면 그 누구라도 황량하고 서글픈 생각에 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맞고있는 2025년 새해의 암울한 지역 현실이다. 설이 코앞이다. 난데없는 쿠데타에 거리마저 휑한, 희망 없는 새해를 맞아야겠는가?

한편 민주당이 집권한 일부 지자체가 앞장서서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주민들에게 민생지원금을 나눠주고 있다는 희소식이 들린다. 경기 파주와 광명에서는 민생 회복 지원금으로 1인당 10만 원의 지역화폐를 지원한다고 한다. 가까운 영광과 전북 완주에서도 설을 맞아 통 크게 1인당 각각 50만 원과 30만 원씩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혹시 아직도 이것을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며 사시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배부른 헛소리다. 지금은 소비를 진작하고 민생경제를 살리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실하다.

지금 발행하는 지역화폐야말로 다다익선이다. 단돈 10만 원의 민생지원금은 지역주민과 소상공인들에게 가뭄의 단비요, 숨넘어가는 환자에게 피 한 방울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경제는 그런 것 아닌가? 이런 경기 불황에는 다리 놓고 공원 조성하는 전시적인 대규모 시책사업보다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우선이다. 지역이라는 하나의 경제단위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지역에 있는 치킨집과 신발가게도, 작은 식당과 소규모 건설회사도 서로 돕고 연결되어있는 이웃들이다. 서로 기대며 상생하는 지역단위의 윈-윈 시스템 경제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지역화폐로 바닥 경기도 돌리고 서민들이 따뜻한 겨울을 나게 하는 애민 정신을 가진 지도자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지혜로운 현인이 아닐까?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곳간의 마지막 쌀 한 톨이라도 주민들에게 나누어 지역 경제도 살리고 얼어붙은 서민들의 겨울이 조금이라도 윤기가 돌았으면 좋겠다. 요즘처럼 힘겨운 이웃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될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우리는 경제학원론 시간에 배운 가장 초보적인 경제이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제성장기에는 새로운 산업을 위한 투자와 기술개발을 게을리해서도 안 되지만, 불황으로 서민들이 신음할 때 곳간의 쌀을 풀어서 백성들의 구휼에 나섰던 옛 선조들의 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문행주
전 전남도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