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꽃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망국의 한 상징하던 봉숭아꽃
화순저널입력 : 2024. 10. 23(수) 16:24
봉숭아는 국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다정한 꽃이다. 꽃 모양이 봉(鳳)을 닮았다고 해서 봉선화라 했고, 여름철에 꽃이 피면 아이들은 괭이밥의 잎과 백반, 소금을 약간 넣고 꽃잎을 으깨 손톱을 붉게 물들이기도 했다. 괭이밥의 수산이 손톱을 물렁하게 하고, 소금이나 백반이 매염제(염료를 결합시키는 매개)가 되어 붉은 색소가 배어들게 하는 과학적인 원리였다.
이태조 때 기록된 《동국세기》를 보면 고려시대 때부터 이런 민속풍습이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전설도 있다. 고려 충선왕(26대) 때 고려를 지배하던 몽골제국의 왕이 어느 날 꿈을 꿨는데, 자신을 위해 가야금을 타는 소녀의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꿈의 내용이 하도 기이해 궁녀들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조사하니, 한 소녀가 손가락에 흰 헝겊을 동여매고 있었다. 그녀의 신분을 알아보니 고려에서 끌려온 소녀였고, 자국의 풍습을 지키기 위해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인 것이었다.
왕은 자국의 풍습을 지키는 소녀를 갸륵히 여겨 몽골로 끌러왔던 충선왕을 돌려보냈다. 충선왕은 고려에 돌아와 왕위에 오른 뒤 그 소녀를 불러오게 했으나 이미 죽은 후였다. 충선왕은 소녀의 정을 기리는 뜻으로 궁궐 뜰에 봉선화를 많이 심도록 했다.
예전에는 의료 기술이나 의약품이 발달하지 않아 집 가까이 봉선화를 심고 구급약(해독, 연육, 무좀 등)으로 사용했다. 또한 붉은색이 악귀를 쫓는다고 하여 더욱 사랑받았다.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손톱에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도 있다. 단오절이면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는 풍습도 계속 전해내려왔다.
봉숭아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다. 봉숭아 씨앗이 잘 익으면 살짝 건드리거나 바람만 들어도 씨앗이 사방으로 터져 흩어지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망국의 한을 노래하던 꽃이기도 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한 혐의로 옥고를 치른 울분을 승화시킨 시 〈봉숭아 꽃〉(김기호 作), 가곡 〈봉선화〉(홍난파 작곡) 등은 모두 일제 치하의 신세를 한탄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가곡 〈봉선화〉는 나라 잃은 망국의 한을 집 울타리 아래서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고 한여름 내내 빨간 꽃을 피우는 봉선화에 비유했다. 이같은 이미지로 인해 제주도나 곤지암 같은 일부 지방에서는 광복절을 전후로 봉선화 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2017년 4월 10일에는 홍난파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일본인 안도 키미코가 〈봉선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안도 키미코는 ‘울 밑에 선 봉선화야’와 ‘고향의 봄’이 한국의 거의 모든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홍난파에 대한 자료를 모두 수집하고 조사해 민족의 번민과 고뇌를 담은 음악적 성과를 거둔 그를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로 평가했다. 조국이 독립과 친일의 갈림길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민족의 한을 풀어낸 음악인으로서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봉선화는 화려한 장미꽃과 달리 가시도, 향기도 없다. 왠지 처량함과 서러움이 서려 있는 꽃이기도 하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는 ‘네 모양이 처량하다/길고 긴 날 여름철에/아름답게 꽃 필 적에/어여쁘신 아가씨들/너를 반겨 놀았도다’라는 한 서린 가사로 쓰여 있다. 젊은 세대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구슬픈 노래를 부르다 보면 눈에서 눈물이 봉숭아 꽃잎 떨어지듯 뚝뚝 떨어진다.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
이태조 때 기록된 《동국세기》를 보면 고려시대 때부터 이런 민속풍습이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전설도 있다. 고려 충선왕(26대) 때 고려를 지배하던 몽골제국의 왕이 어느 날 꿈을 꿨는데, 자신을 위해 가야금을 타는 소녀의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꿈의 내용이 하도 기이해 궁녀들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조사하니, 한 소녀가 손가락에 흰 헝겊을 동여매고 있었다. 그녀의 신분을 알아보니 고려에서 끌려온 소녀였고, 자국의 풍습을 지키기 위해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인 것이었다.
왕은 자국의 풍습을 지키는 소녀를 갸륵히 여겨 몽골로 끌러왔던 충선왕을 돌려보냈다. 충선왕은 고려에 돌아와 왕위에 오른 뒤 그 소녀를 불러오게 했으나 이미 죽은 후였다. 충선왕은 소녀의 정을 기리는 뜻으로 궁궐 뜰에 봉선화를 많이 심도록 했다.
예전에는 의료 기술이나 의약품이 발달하지 않아 집 가까이 봉선화를 심고 구급약(해독, 연육, 무좀 등)으로 사용했다. 또한 붉은색이 악귀를 쫓는다고 하여 더욱 사랑받았다.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손톱에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도 있다. 단오절이면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는 풍습도 계속 전해내려왔다.
봉숭아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다. 봉숭아 씨앗이 잘 익으면 살짝 건드리거나 바람만 들어도 씨앗이 사방으로 터져 흩어지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망국의 한을 노래하던 꽃이기도 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한 혐의로 옥고를 치른 울분을 승화시킨 시 〈봉숭아 꽃〉(김기호 作), 가곡 〈봉선화〉(홍난파 작곡) 등은 모두 일제 치하의 신세를 한탄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가곡 〈봉선화〉는 나라 잃은 망국의 한을 집 울타리 아래서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고 한여름 내내 빨간 꽃을 피우는 봉선화에 비유했다. 이같은 이미지로 인해 제주도나 곤지암 같은 일부 지방에서는 광복절을 전후로 봉선화 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2017년 4월 10일에는 홍난파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일본인 안도 키미코가 〈봉선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안도 키미코는 ‘울 밑에 선 봉선화야’와 ‘고향의 봄’이 한국의 거의 모든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홍난파에 대한 자료를 모두 수집하고 조사해 민족의 번민과 고뇌를 담은 음악적 성과를 거둔 그를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로 평가했다. 조국이 독립과 친일의 갈림길 앞에 놓인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민족의 한을 풀어낸 음악인으로서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봉선화는 화려한 장미꽃과 달리 가시도, 향기도 없다. 왠지 처량함과 서러움이 서려 있는 꽃이기도 하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는 ‘네 모양이 처량하다/길고 긴 날 여름철에/아름답게 꽃 필 적에/어여쁘신 아가씨들/너를 반겨 놀았도다’라는 한 서린 가사로 쓰여 있다. 젊은 세대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구슬픈 노래를 부르다 보면 눈에서 눈물이 봉숭아 꽃잎 떨어지듯 뚝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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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
화순저널
hsjn2004@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