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서 인터뷰도 안 하려고 했는데, 마을 주민분들의 포용력과 적극적인 노력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박현아 용강마을 이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수줍은 듯 덧붙였다.

화순군 이서면 용강마을은 ‘청정전남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과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사업’에서 각각 우수 마을로 선정되며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변화의 주역은 교류와 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용강마을 주민들과 박현아 이장이다. 박현아 이장에게 마을공동체의 중요성, ‘작은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연대의 효과 등에 대해 듣고 화순 군민과 화순저널 독자에게 전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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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과 교류로 소외감 없는 마을

용강마을에서 살게 된 지 만으로 8년이 조금 넘었네요. 이른 은퇴 후 귀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마을에 산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그냥 ‘내 삶’의 환경을 바꿔서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들어왔다고만 생각했어요. 마을이라는 공동체에 들어와 이웃들과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마을에 대해 생각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죠.

살다 보니 ‘여기엔 내 삶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서로 맞닿아 있고, 협력해야 할 부분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활동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1월부터 마을 이장으로 취임했으니, 이제 막 2년차에 접어든 초보 이장입니다. 마을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 마을을 찾아주시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즐겁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해요.


▲ 소박한 사업에서 전남도 우수 사례로

용강마을은 본래 작고 소외된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기존 가구가 25가구 정도였는데, 화순군에서 전원주택 택지 개발을 진행한 뒤로 25가구 정도가 전입하게 됐죠. 은퇴 이후 전원에서의 삶을 꾸리기 위해 귀촌하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지금은 55가구 정도가 오가며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의 농어촌 인구가 점점 줄고, 소멸할 것 같다는 우려가 있지만 용강마을은 비교적 가구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는 편이라, 아직까지는 그런 걱정이 덜한 편이네요.

화순군과 전라남도에서 마을공동체를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 많아요. 좋은 사례를 보면 굉장히 고무되기도 하죠. 용강마을 같은 경우에는 ‘청정전남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마을의 외관을 단장했습니다. 원래는 칡넝쿨과 잡초가 도로까지 침범할 정도였어요. 3년에 걸쳐 깔끔하게 정리하고,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꿔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죠.
▲ 어려운 동네에서 자부심 드는 마을로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이 마을의 하드웨어를 바꾸는 사업이었다면,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소프트웨어도 가꿀 수 있었습니다. 복지, 문화, 교육, 예술 활동을 통해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이었어요. 저희는 그 사업으로 마을에 대한 공부를 진행했습니다. 용강마을에 어떤 자산과 자원이 있는지, 마을에 얽힌 이야기나 자랑거리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시간을 마련했죠. 이것만으로는 아쉬우니 마을의 어르신들이 자랑거리를 홍보하는 영상도 찍고, 소박한 책자도 만들었습니다. 사업이 2년째 접어들었을 때는 환경 교육도 받고, 공유 농업을 진행하며 함께 찰벼를 심고 찹쌀을 도정해 모든 가구에 나눠드리기도 했습니다. 캄포 도마 만들기, 친환경 비누 만들기 등의 체험도 진행했죠.

당시에 코로나19로 교류가 많이 위축되는 시기였어요. 마을 공동체가 많이 와해되는 시기에 그렇게 교류하다 보니 기존 주민과 새로 귀촌한 주민들이 훨씬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기회를 통해 공동체가 좀 더 활기를 띠고, 어르신들도 매우 즐거워하셨어요. 본래 용강마을은 자원이나 농토가 부족해 형편이 어려운 마을이었는데, 두 차례나 우수 마을로 상을 받고, 책자도 만들게 되니 주민들이 마을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됐어요.


▲ 텃세 없이 어울리는 거주·귀촌인

기존 주민분들이 새로 귀촌한 주민에게 텃세를 부리거나 억세게 대하시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어요. 그런데 사업을 추진하면서 교류하다 보니 어르신들은 굉장히 소박하시고, 의외로 포용력도 있으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업에도 큰 어려움 없이 협조해주셨어요. 부끄러워서 소극적인 면이 있으실지언정 텃세를 부리는 일은 없으셨습니다.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가 없이 자원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마을이 발전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이 생기니 다들 마을공동체 사업에 적극적으로 임하시는 것 같아요. 마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큰 변화를 가져와 주민들이 화합하는 계기도 형성됐잖아요. 주민들의 협조적인 모습에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젊은 여성 이장으로서 목소리를 높이는 법

작년에 처음 이장을 맡았을 때, 이서면 이장단에는 저보다 나이가 있으신 여성 이장이 두 분 더 계셨어요. 공식적인 이장단 회의에 참여할 때 도움과 조언을 많이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는 나이 어린 여성 이장의 의견이 가려지기가 쉬운데, 각 이장단들의 캐릭터를 파악하고 대화하는 방식을 많이 배웠습니다.

마을에서 이장으로 활동할 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선입견을 가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이유를 생각해보니 용강마을은 독특하게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 중 대다수가 여성분들이세요. 여성이 마을 일에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별 편견이 없으신 거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여성이다 보니 어르신들이 더 편안하게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요. 자세하고 섬세하게 소통할 수 있으니,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마을 발전, 시범적인 제안과 적극적인 개선 필요

이번에 이서면에서 기초생활거점 조성사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센터를 짓게 되는데, 그 건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져야 해요. 기존에 기획된 ‘동전 빨래방’ 대신 ‘조리실’을 넣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이서면은 마을이 15개 밖에 없고 면적이 작거든요. 조리실에서 반찬을 만들어 점심시간에 각 마을회관으로 배달하기까지 1시간이면 충분하고요. 연로하신 분들이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에 어려움을 느끼시는데, 조리실에서 각 마을로 배달을 할 수 있게 되면 노동의 강도가 줄어들 테니까요.

어떤 계획을 수립하고 일을 추진할 때, 기존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고수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껴요. 특히 산골 같은 경우는 지역사회에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새로운 창을 여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방식과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 젊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지역사회가 정체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곤 합니다. 앞으로도 젊은 이장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역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화가 들어갈 필요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 기존 주민과 귀촌 주민의 ‘어울림’

작년에 화순군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었어요. 주민들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용강 어울림 생태문화 센터(가칭)’을 설립할 예정입니다. 기존의 마을회관이 좁고 낡기도 했지만 기존 주민들이 이용하던 곳이다 보니 새로 귀촌한 주민들이 이 공간을 잘 이용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새로 만들어질 마을회관의 명칭을 ‘어울림 센터’로 정하고,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역량 개선의 장이 되도록 꾸려나갈 생각입니다.

문화 복지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일부 주민만 이용하게 되면 마을 발전이 어려워집니다. 센터를 중심으로 마을의 모든 주민이 자주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건립하고 나면 어르신들을 위한 건강 체조 교실을 운영해 볼 계획이고요.


▲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요즘은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21세기에 무슨 공동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공동체의 중요성이 훨씬 부각 됐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사회처럼 강하게 연대할 수는 없지만, 마을공동체 내에서 느슨하게나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귀촌한 주민과 원래 살던 주민이 협력해 한 마을을 만들어 나가고, 서로 교류하며 건강한 공동체를 만든다는 건 큰 과제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먹하고, 거부감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같은 자연, 같은 환경을 공유한다는 것은 분명 우리의 삶에 맞닿는 지점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마음을 열고 교류하다 보면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드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