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보리밥 이야기
2만 3천년 전 쓰였던 이스라엘 한 오두막 화로에서 발견된 보리
꽁보리밥 하면 조선시대 오성대감 이항복 이야기 빼놓을 수 없어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입력 : 2023. 11. 03(금) 20:24
보리는 쌀, 밀, 옥수수, 콩과 함께 5대 식량작물이다. 보리를 인류가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기원전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에서 보리로 빚은 맥주를 마신 사실이 있지만, 사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가 없다.

하버드대학의 한 연구팀은 2만 3천년 전에 쓰였던 이스라엘의 한 오두막 화로에서 여러 곡물과 함께 보리 알갱이들을 발견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지식보다 1만 년 전 이상 되었다고 주장했다.

보리는 한자로 맥(麥)이라 하고 사람 둘(人人)에 숫자 18(十八)이 어우러진 글로 ‘저녁 18시(6시)에 보리밭에서 만나자’ 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떤 속설에 의하면 보리알의 생긴 모양이 여성 생식기와 닮아서 쌀은 남자가 보리는 여자가 먹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예전에 보릿고개를 겪을 때면 쌀은커녕 보리와 잡곡으로 겨우 끼니를 연명해야 했기에 <양반은 트림하고 상놈은 방귀 뀐다 >는 속담까지 나온 것도 쌀밥과 보리밥 먹던 처지를 서로 빗댄 말이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너무도 배고픈 옛 시절에 “보리밥. 쌀밥~!” 하면서 주먹과 보로 손놀이까지 했었을까? 영어로 보리를 발리(barley)라고 하여 비슷한 발음 때문에 그 유래를 찾는 사람도 있지만...뭔가 억지스럽게 느껴지고 알 수가 없다.

옛 로마시대엔 검투사들이 근육과 스태미나를 키우기 위해 보리를 먹었고 긴 항해를 할 때도 비타민B의 공급원으로 먹었다.

조선시대에도 밥 종류만 90여 종이 넘고 보리밥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질 좋은 꽁보리밥부터 풋보리로 지은 앵두보리밥, 겉보리밥, 찰보리밥, 피보리밥 등 다양하다. 특히 꽁보리밥에 얽힌 이야기 중에서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오성대감 이항복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심한 가뭄이 들어 고생하고 있는 백성들의 고충을 살펴볼 겸 경기도 가평의 한 주막에 이항복이 들렀을 때였다. 배가 고팠던 그가 주막 주인에게 밥 한 상을 청하자 허름한 옷차림을 훑어보던 주인이 “어쩌나, 드릴 음식이 없는데요” 하였다. “아니. 주막집에 음식이 없다니?” “죄송하오나. 오늘 새로 부임한 사또가 식사 중이라서...” 하고 말끝을 흐렸다.

어쩔 수 없이 이항복은 찬 보리밥이라도 사정을 하여 허기를 채운 후 방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방안은 무뢰배 같은 무리들과 신임 현감이 어우러져 큰 상에 술판까지 벌이고 있었다.

주막집을 뒤로 하고 나온 오성대감 이항복은 마침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던 선비에게 “담뱃불 좀 얻읍시다.”고 청하자 쾌히 불을 건네준 선비가 “노인장께서는 이 더위에 어디를 가시는지요? 길손끼리 만났으니 통성명이나 하십시다.” 하였다. “나 말씀이요? 이항복이라 합니다.” 하고 인사말을 건네자 갑자기 선비의 안색이 변하더니 “노인장, 이름을 바꾸셔야 하겠소. 오성대감님은 온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분인데...존함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안 되는 일이오”

그 후 며칠이 지나 이항복이 신임 현감을 불렀다. “아니. 그 꽁보리밥 먹던 영감이 오성대감이라니...? 큰일 났구나” 죽었구나 싶었고 오금이 저리고 사지가 떨렸다. 오성대감은 잔치를 벌이던 신임 현감을 파직하고 그 자리에 담뱃불을 빌려줬던 선비를 임명했다」 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는 천대 받던 꽁보리밥도 이제는 당뇨에 좋고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에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는 것을 보면...시대의 변화에 따라 밥의 위상도 변한다는 게 사실이다

보리밥집에 갈 때면 출신보다도 사람의 됨됨이와 능력을 중시했던 오성대감 이항복의 뛰어난 면모가 생각난다.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문의원 원장
문장주 화순저널 칼럼니스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화순저널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