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해방과 민주주의 혁명을 주창하다
『박현채 평전』 8장 6월항쟁의 격랑 속에서
화순저널입력 : 2022. 01. 14(금) 19:34
분단에서 농어촌 문제까지,
시대의 화두를 아우르며



한길사는 1988년 9월 ‘사상의 대중화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고 월간지 『사회와 사상』을 창간했다. 박현채는 리영희⋅강만길⋅김진균⋅임헌영과 함께 편집위원으로 위축되었다. 한길사는 잡지 창간 기념행사로 8월 22일 서울 명동 YMCA강당에서 통일 문제 대강연회를 열었다. 박현채는 문익환, 이종석과 함께 연사로 나서 강연을 했다.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창간호에 실린 리영희의 「남북한 전쟁 능력 비교 연구」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또한 문익환⋅김대중⋅김낙중 등 6인이 통일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현채는 강만길과 대담을 나누었는데, 이는 「80년대 민족운동사적 의미」라는 기사로 정리되었다. 이 기사 역시 화제가 되었다.

박현채는 이후 『사회와 사상』에 몇 차례 평론과 시론을 썼다. 1989년 2월호에 실린 「남북 경제 교류의 이념과 방향」은 대단히 시의적절한 글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세계적인 해방 무드가 진행되는 가운데 88올림픽을 전후해 북방 외교가 진전되면서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이 대북 정책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다음 해 1월에는 동구 공산권 국가와는 처음으로 헝가리와 수교를 맺었다. 이 무렵 정주영(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한국 기업인 최초로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박현채는 남북한의 경제 교류가 통일을 위한 상호 접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단순한 물질적 재화의 교류가 아니라 민족공동체를 복원하고 새로이 창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통일을 목표로 경제 교류를 하고자 할 때의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먼저 남북은 상호 제공 가능한 상품 품목을 제시하고 이것의 상호 교환을 위한 검토를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한 노력은 초기 단계에서는 초보적인 경제적 합일점의 추구라는 낮은 차원의 것이지만 점차적으로 이행하면서 민족공동체의 복원 내지는 새로운 창출을 위한 경제적 기초인 민족경제의 확대를 위한 것으로서 적극적인 노력으로 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한 노력으로 첫째는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자 그리고 외국 관련 자본과의 대결을 위한 상호 보완으로서의 상품 교류의 내용을 이루어야 한다.

둘째는 이런 것들은 일정한 축적을 기초로 하여 남북을 총괄하는 비교우위에 의한 분업까지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와 같은 단위 상품의 상호 교류는 종국에는 경제통합으로 되어 통합적 경제계획기구의 창출로 되면서 정치적 통합의 진전과 함께 혼합적 경제체제를 조성해가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

문제는 단순한 경제 교류의 실현이라는 데 있지 않다. 정치적 합일을 기초로 한 경제 교류 그리고 그것을 매개로 한 보다 더한 정치적 통합과 민족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데에 핵심은 있다.

- 박현채, 「남북 경제 교류의 이념과 방향」, 『사회와 사상』, 1989년 2월, 103~104쪽


박현채의 학문은 점차 성숙하여, 특히 경제나 민족 문제에 있어서는 대안까지 제시하는 경륜을 보이게 되었다. 「남북 경제 교류의 이념과 방향」에서 제시한 대안들은 북한에 적대적인 정권이 물러나고 남북 교류와 협력에 힘쓰는 민주 정권이 수립되면 언제든 검토, 채택될 수 있는 방안이었다.

한편 도서출판 나남의 대표 김상호는 1988년 6월 “자본주의에 훼손당한 인간적 가치를 되찾고 역사적 물결 속에서 주체적으로 서기 위한 시각을 가다듬기 위해서” 『사회비평』을 창간했다. 창간 특집으로 ‘변혁기의 한국 사회: 현상과 본질’을 기획하면서 박현채⋅한완상⋅최일남의 권두 대담을 마련했다. 「변혁기의 한국 사회,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글로 정리된 이 대담에서는 남북통일, 미국과의 관계, 노동 문제, 지식인 및 중산층 문제 등을 다루었다.

박현채는 여기에서 특히 ‘중산층’이라는 용어에 대해 강경하게 비판했다. “내가 중산층이란 말을 왜 싫어하냐면 바로 언어의 희롱이기 때문입니다. 중산층이 있으면 대산층도, 소산층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 역대 정권이 가장 선전해온 것은 ‘너는 중산층이다’ 하는 것입니다”라면서 중산층과 서민층의 논리가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안정 논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6월항쟁을 전후하여 들불처럼 일어난 노동계에서도 몇몇 잡지와 무크를 창간했다. 실천문학사에서는 1988년 1월에 무크지 『노동문학』을 창간했는데, 창간사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민족문학운동의 지난 성과를 역사의 빛나는 새 흐름과 바르게 잇는 일에 주력하고”, “다음으로 우리는 ‘노동’이란 말의 본래적 의미에 충실하려 한다”라고 그 나름의 포부를 천명했다. 이어서 “‘일함’을 통하여 세상을 지탱하며 묵묵히 역사를 일궈가는 다수 이웃들의 삶에 두루 관심을 갖고자 하며, 그 관심을 통해 그러한 삶에 깃든 새로운 문화적 가치들을 바르게 읽어내고자 한다”라며 잡지가 나아갈 바를 밝혔다. 이 무크지의 창간호 기획 논란 첫머리에 박현채의 「국가독점자본주의하에서의 노동운동」이 실렸는데, 들불처럼 타오르는 노동운동의 현장을 분석한 그의 글은 많은 노동자들에게 국가독점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의 눈을 뜨게 했다.

또한 박현채는 김홍명(현 조선대 명예교수)과 공편으로 사계절 출판사에서 『통일전선과 민주혁명』을 발간했다. 1권은 1988년 10월에, 2권은 그다음 해에 발간했는데, 박현채는 2권에 「한국 사회민주화의 성격과 과제」라는 글을 수록했다. 박현채와 김홍명은 이 책의 편찬 배경으로 “민족해방운동과 민주주의 혁명의 노력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킬 절실성에 직면”했음을 내세웠다. 박현채는 1980년대 후반의 혁명적 열기 속에서 민족 해방과 민주주의 혁명을 주창했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그는 학계에 입문할 때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에 매진했던 농업에 대한 고민을 계속 놓지 않고 있었다. 박현채는 1988년 8월 이우재가 주관하는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와 함께 『한국농업⋅농민문제연구』(전 2집)를 편찬했다. 그는 이 책의 1권에 「한국 자본주의의 전개와 농업⋅농민 문제」를 수록했다. 이 글은 농업과 관련한 박현채의 철학을 담은 대표적 논문 중 하나다.

한 나라의 국민경제에서 농업에 주어지는 요구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한 나라 경제의 재생산에서 주요한 것으로 되는 소재 시장이라는 쪽에서 보면 먼저 소재의 보전이라는 면에서 농업은, ① 기초산업으로서 국민경제의 재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값싸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농업은 비농업 부문에서 사회적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먹일 수 있도록 값싼 식량용 농산물을 사회적 수요에 상응하게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③ 농업은 자본을 위해 값싼 노동력을 필요에 따라 공급하는 산업예비군의 공급원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시장 면에서의 농업의 역할은 보완적 시장으로서의 역할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제도하에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그 취득의 사적⋅자본가적 형태 간의 모순에서 생기는 시장 부족에 대하여 농업이 중요한 균형 요인으로 작용하는 데서 온다.

-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편, 「발간사」, 『한국농업⋅농민문제연구』 1, 연구사, 1988, 7~8쪽


박현채는 민족경제의 자립을 통해서만이 농업⋅농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고 보았다. 즉 농업⋅농민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소농 경영의 극복이나 과거 청산 문제가 제기되지만, 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사회 변혁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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