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인 김정식이 진행한 2020년 12월 YTN 프로인 오늘의 수수께끼 풀이에서 ‘거꾸로 자라는 것은 무엇일까요?’를 문제로 냈다. 정답은 고드름이었다.

한겨울 지붕 위에 쌓인 눈이 햇볕에 녹아서 생기며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얼어붙으면서 끝이 뾰족한 막대기 모양의 얼음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누구나 알고 있는 고드름으로 한자로 매달린 얼음이란 뜻을 가진 현빙(懸氷)이다.

그런데 왜 고드름이라고 했을까? 그 어원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곧다(直)는 것에서 온 ‘곧 얼다’로 곧얼음에서 곳어름, 고드름으로 되었다는 의견이고, 둘째는 뾰족하다와 꼬챙이의 옛말인 ‘곶’에서 곶어름, 곳어름, 고드름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고드름의 어원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겨울을 대변하는 것은 눈이고 눈이 만들어내는 것이 고드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18세기의 문헌에서 ‘곳얼음’이란 말이 등장한다. 곧을 직(直)과 동사(얼다)가 만나서 말 그대로 ‘곧게 얼었다’라는 뜻을 생각하면 곧다는 것과 뾰족하다는 두 가지 중에 어떤 것에 의미를 더 둬야 할지 여러분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나는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살다시피 하였다. 도로 사정이 안 좋아 교통이 끊기기 일쑤였고 눈을 치우고 통로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눈도 많이 왔었다. 깊은 산간 지방에서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겨울이 되어 농사를 짓지 않는 농한기가 되면 농사를 중요시했던 선조들은 이듬해 농사를 위한 풍년제를 지냈다. 정월 대보름의 달맞이, 쥐불놀이, 집집마다 돌며 지신을 누른다는 지신밟기, 장수를 비는 마음으로 지은 오곡밥과 약식 그리고 귀밝이술까지.... 어린 시절 친구들과 풍악대를 쫓아가며 얼싸절싸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봉선화·고드름 같은 노래도 친구들과 같이 불렀고 손톱에 붉게 물들인 꽃물이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꽃 같은 시절이었다.

선조들이 풍년을 기원하는 풍습 중에는 고드름 점(占)도 있었다. 농사에 모든 것을 걸다 보니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터득하고 해석하며 합리적인(?) 지식을 얻어냈다고 할 수 있다.

고드름(占)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추워야 풍년이 든다는 말과 연관이 있으며 고드름의 굵기와 길이, 모양과 달린 개수 등을 보고 점을 쳤다. 예를 들어서 고드름이 굵고 많이 달리면 풍년, 반대면 흉년, 고드름이 가지런히 많이 달리면 풍년, 들쭉날쭉하면 흉년, 주렁주렁 많이 달리면 풍년, 적게 달리면 흉년이 든다고 점(占)을 쳤다.

날씨가 추워야 고드름도 많이 달리고 날이 추우면 논 밭두렁의 벌레도 얼어 죽게 되므로 이듬해에 병충해가 적어 풍년이 든다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고드름 점을 속신(俗信)으로 보기보다는 차라리 ‘풍년 고드름’이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드름은 반드시 겨울에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름철에도 볼 수 있는 명소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경남 밀양에 있는 얼음골(천연기념물 224호)이다. 초여름에서 처서 때까지 얼음을 볼 수 있고 0℃의 온도가 유지되어 위에서 아래로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을 볼 수 있으며 땅에서 위로 자라는 역고드름도 볼 수 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은 한여름에도 발을 담글 수가 없을 정도로 차갑고 너덜 바위들 틈새로 찬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밀양 얼음골은 특히 동의보감을 써낸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밖의 장소로는 경북 청송의 얼음골, 전북 진안의 풍혈 냉천, 경북 의성의 빙계 계곡 등이 있다.

2016년 1월에는 강원도 정선에서 국내 최초로 제1회 고드름 축제도 개최가 됐다. 길이가 100m에 이르는 국내 최장의 눈썰매장(씽씽 고드름 슬라이더)을 비롯하여 고드름 터널, 고드름 초가집, 얼음 갈대숲과 얼음 축구 등을 선보였다.

‘코로나 사태도 좀 잔잔해지면 화순도 주변 명산에 얼음 왕국을 구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코로나 때문에 이제는 사람이 드문 조용한 오지가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칼싸움한다고 공중에서 고드름을 휘두르면 힘없이 부러지곤 했던 것을....

왜 단단한 고드름이라고 했을까? 또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라고 가사를 붙인 이유는 뭘까? 창밖에도 못 나오고 갓 결혼한 새색시가 고드름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했을까?

문장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