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말기의 광기 속에서 『한국농업의 구상』 출간하다
『박현채 평전』5장 피로 물든 시대, 목숨을 건 외침
화순저널입력 : 2021. 10. 01(금) 19:18
광기의 시대,
‘농민 조직화’를 주장하다
박현채는 거듭되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변란과 세월의 변조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연치(年齒)는 어느덧 40대 후반에 이르렀고, 시대의 먹구름 속에서 생활은 더욱 쪼들렸다. 5공의 폭압 속에서 그를 연사로 부르는 강연회가 있을 리 없었고, 원고 청탁도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서울의 봄’ 기운으로 한때 잘 팔리던 저서도 날개를 접었다.
박현채는 그동안 여기저기에 기고했던 농민∙농업 관련 글을 모아 1981년 4월 『한국농업의 구상』을 출간했다. 한길사에서 ‘오늘의 사상신서 23’으로 출간한 것이었다. 360쪽의 이 신서에는 21편의 농민∙농업 관련 논문을 실었다. 가장 많은 시련과 소외를 겪으면서도 가장 적게 이익을 보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쓴 글들이었다.
아무리 폭압 정권이라도 ‘천하지대본’이라는 농민∙농업 문제를 다룬 책을 막을 명분은 없었다. 출판사도 이런 틈새를 노려 ‘감히’ 5공 초기에 박현채의 책을 낸 것이었다. 우선 이 책의 본문 구성을 살펴보자.
Ⅰ. 농민은 누구인가
농민은 누구인가
한국농업이 가야 할 방향
농민의 입장에서 본 경제정책
이농을 부른 농촌 극대화
기업농의 국민경제적 인식
농공병진이란 무엇인가
세계 식량 위기와 식량 자급의 가능성
Ⅱ. 땅의 역사, 땅의 경제학
땅은 누구의 것인가
다시 등장한 소작제도
농지제도 개혁론에 대하여
소작제도 합법화론에 대한 비판
농지소유 상한제 폐지의 문제점
농지법과 농지의 세분화
자본주의와 소농 경제의 한 연구
Ⅲ. 농산물 가격론
농산물 가격과 경제발전
농업생산비 추계 방식 비판
농산물 가격 불안정의 저류
Ⅳ. 농민에 의한 농민의 기구
농업에 있어서 국가자본의 역할
한국농업 발전의 방향 정립
농민에 의한 농협 운동
Ⅴ. 움직이는 인간으로서의 농민
농민의 자각과 농민운동
농민운동과 농업 발전
책의 목차를 소개한 것은 박현채의 농민∙농업∙농정 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대안 제시의 스펙트럼을 살피기 위해서다. 그는 여느 전문가 못지않게 농업∙농민 문제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식과 대안을 갖추고 있었다.
「저자의 말」을 살펴보면 박현채의 농업∙농민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농업을 “낭만 어린 목가적인 사업도 아닐 뿐만 아니라 변함없이 향수를 안겨주는 대상도 아니”라고 말한다. 농촌은 농민들의 생존을 위한 장(場)일 따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농업이 자본주의적인 지배체제에 편입되면서 농촌에도 메마른 경제 논리가 들어왔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에만 농촌이 이러했다고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과거의 농촌에는 자연과의 직접적인 상호 접촉에서 오는 정감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즉 인간 간의 상호 관계는 과거에도 메말랐다고 본 것이다.
『한국농업의 구상』의 마지막 글에 실린 「농민운동과 농업 발전」은 『창작과 비평』 1978년 겨울호(제50호 기념 특집호)에 ‘농민운동의 과제와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화제를 모았던 글이다. 단행본에서는 제목을 살짝 바꿔 수록했는데, 이 글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유신 말기의 상황에서 박현채가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농민운동의 과제를 다음의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토지 공개념의 확대를 통해 국유화를 실현하면서 농민 해방을 시도함으로써 토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둘째, 농민의 진화를 통해 소경영 양식을 극복하고 자본제적 진화를 시도해야 한다. 셋째, 이와 같은 경제적 기초 위에서 농촌의 민주화가 실현되어어야 한다.
『한국농업의 구상』에 수록된 논문 중 또 하나 주목해볼 만한 글은 「농민의 입장에서 본 경제정책」이다. 이 글은 원래 『기독교 사상』 1978년 7월호의 특집 ‘농민의 현실과 농촌 선교’에 게재되었다. 『기독교 사상』의 특집에는 박현채의 논문 외에도 배종열의 「한국 교회와 농촌 선교」, 최병욱의 「농협, 무엇이 문제인가」가 함께 실렸다.
농업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박현채는 “농민의 자기이해 실현을 위한 정치경제적 조직은 해방 후의 약간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거부되어왔다”고 지적하면서 “유일한 경제조직인 농협은 일반 농민의 참여가 사실상 봉쇄된 기관으로서 상품 실현을 위한 도구로 전락 이용되어왔다”고 진단했다. 이어서 농민층 스스로가 조직화를 시도하여 자기 이익을 실현시키고 광범위하게 현실에 참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같지만, 유신 말기의 광기가 넘치는 시대에 이 같은 주장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농민 조직화’를 주장하다
박현채는 거듭되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변란과 세월의 변조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연치(年齒)는 어느덧 40대 후반에 이르렀고, 시대의 먹구름 속에서 생활은 더욱 쪼들렸다. 5공의 폭압 속에서 그를 연사로 부르는 강연회가 있을 리 없었고, 원고 청탁도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서울의 봄’ 기운으로 한때 잘 팔리던 저서도 날개를 접었다.
박현채는 그동안 여기저기에 기고했던 농민∙농업 관련 글을 모아 1981년 4월 『한국농업의 구상』을 출간했다. 한길사에서 ‘오늘의 사상신서 23’으로 출간한 것이었다. 360쪽의 이 신서에는 21편의 농민∙농업 관련 논문을 실었다. 가장 많은 시련과 소외를 겪으면서도 가장 적게 이익을 보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쓴 글들이었다.
아무리 폭압 정권이라도 ‘천하지대본’이라는 농민∙농업 문제를 다룬 책을 막을 명분은 없었다. 출판사도 이런 틈새를 노려 ‘감히’ 5공 초기에 박현채의 책을 낸 것이었다. 우선 이 책의 본문 구성을 살펴보자.
Ⅰ. 농민은 누구인가
농민은 누구인가
한국농업이 가야 할 방향
농민의 입장에서 본 경제정책
이농을 부른 농촌 극대화
기업농의 국민경제적 인식
농공병진이란 무엇인가
세계 식량 위기와 식량 자급의 가능성
Ⅱ. 땅의 역사, 땅의 경제학
땅은 누구의 것인가
다시 등장한 소작제도
농지제도 개혁론에 대하여
소작제도 합법화론에 대한 비판
농지소유 상한제 폐지의 문제점
농지법과 농지의 세분화
자본주의와 소농 경제의 한 연구
Ⅲ. 농산물 가격론
농산물 가격과 경제발전
농업생산비 추계 방식 비판
농산물 가격 불안정의 저류
Ⅳ. 농민에 의한 농민의 기구
농업에 있어서 국가자본의 역할
한국농업 발전의 방향 정립
농민에 의한 농협 운동
Ⅴ. 움직이는 인간으로서의 농민
농민의 자각과 농민운동
농민운동과 농업 발전
책의 목차를 소개한 것은 박현채의 농민∙농업∙농정 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대안 제시의 스펙트럼을 살피기 위해서다. 그는 여느 전문가 못지않게 농업∙농민 문제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식과 대안을 갖추고 있었다.
「저자의 말」을 살펴보면 박현채의 농업∙농민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농업을 “낭만 어린 목가적인 사업도 아닐 뿐만 아니라 변함없이 향수를 안겨주는 대상도 아니”라고 말한다. 농촌은 농민들의 생존을 위한 장(場)일 따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농업이 자본주의적인 지배체제에 편입되면서 농촌에도 메마른 경제 논리가 들어왔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에만 농촌이 이러했다고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과거의 농촌에는 자연과의 직접적인 상호 접촉에서 오는 정감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즉 인간 간의 상호 관계는 과거에도 메말랐다고 본 것이다.
『한국농업의 구상』의 마지막 글에 실린 「농민운동과 농업 발전」은 『창작과 비평』 1978년 겨울호(제50호 기념 특집호)에 ‘농민운동의 과제와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화제를 모았던 글이다. 단행본에서는 제목을 살짝 바꿔 수록했는데, 이 글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유신 말기의 상황에서 박현채가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농민운동의 과제를 다음의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토지 공개념의 확대를 통해 국유화를 실현하면서 농민 해방을 시도함으로써 토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둘째, 농민의 진화를 통해 소경영 양식을 극복하고 자본제적 진화를 시도해야 한다. 셋째, 이와 같은 경제적 기초 위에서 농촌의 민주화가 실현되어어야 한다.
『한국농업의 구상』에 수록된 논문 중 또 하나 주목해볼 만한 글은 「농민의 입장에서 본 경제정책」이다. 이 글은 원래 『기독교 사상』 1978년 7월호의 특집 ‘농민의 현실과 농촌 선교’에 게재되었다. 『기독교 사상』의 특집에는 박현채의 논문 외에도 배종열의 「한국 교회와 농촌 선교」, 최병욱의 「농협, 무엇이 문제인가」가 함께 실렸다.
농업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박현채는 “농민의 자기이해 실현을 위한 정치경제적 조직은 해방 후의 약간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거부되어왔다”고 지적하면서 “유일한 경제조직인 농협은 일반 농민의 참여가 사실상 봉쇄된 기관으로서 상품 실현을 위한 도구로 전락 이용되어왔다”고 진단했다. 이어서 농민층 스스로가 조직화를 시도하여 자기 이익을 실현시키고 광범위하게 현실에 참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같지만, 유신 말기의 광기가 넘치는 시대에 이 같은 주장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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