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은나라 때의 갑골문자에는 메뚜기 한 마리와 그 아래 불(火)이 그려져 있다. 메뚜기를 구워 먹는 그림이다. 이 글자가 가을 추(秋)자이다. 은나라는 곧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고 메뚜기를 구워 먹는 풍습은 동이족만의 고유한 문화였다. 그렇다면 가을 추(秋)라는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메뚜기를 불에 굽고 있는 형상을 본뜬 갑골문자

가을 들녘에 누렇게 나락이 익을 때면 벼 줄기에 붙어있는 메뚜기떼를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어린 우리들은 메뚜기를 잡아서 강아지풀에 줄줄이 꿰어 허리춤에 매달고 다녔다.

아마도 벼 화(禾)자는 메뚜기를 의미하는 것이고 구워 먹기 위해 불(火)에 올린다는 의미가 합쳐져서 가을 추(秋)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유추를 해본다.

재작년부터 신종코로나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케냐와 소말리아 등 동아프리카는 대규모 메뚜기떼가 출몰해 휩쓸고 가면서 농작물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초토화시켰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무령왕 때인 521년 가을, 메뚜기떼로 900가구가 신라로 이주했다고 한다. <고려사>에서도 메뚜기로 인한 피해 기록이 무려 26번이나 나온다. 또 고구려 8번, 백제 5번, 신라는 19번이나 메뚜기떼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메뚜기로 입은 피해가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세종대왕은 아예 군대를 출동시켜 메뚜기떼를 잡게 했겠는가? 중국의 당 태종은 메뚜기 몇 마리를 잡아서 “차라리 내 오장육부나 갉아 먹어라”고 소리 지른 후 메뚜기 몇 마리를 삼켰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인간과 동물이 자연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 아무리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인간들도 따지고 보면 이런 동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동물 없이는 인류 역사도 없고 동물들과 더불어서 역사를 이루어왔다고 볼 수 있다. 양, 돼지, 소와 말 같은 가축들은 식량과 교통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농업혁명을 이끌어온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와 인간을 괴롭혀온 메뚜기떼는 인류의 역사를 바꿔온 필요악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메뚜기란 말의 유래는 산의 뜻인 ‘뫼’와 뛴다는 뛰기(=도기)를 합쳐서 메뚜기가 탄생한 것이다. 1527년 최세진이 집필한 <훈몽>에 ‘묏도기’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풀이가 재밌게 느껴지는 것은 산토기(멧토끼)로 ‘잘 도망가다’는 뜻의 토끼(兎)+다에서 온 뜻과 비교하면 말뜻의 유래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뛰다’와 ‘도망가다’의 차이일 뿐 아닐까?

메뚜기는 고단백이라서 효능도 좋다. 특히 어린이 성장발달에 좋다고 한다. 이외에도 경련성 기침이 되풀이되는 백일해에도 효능 있고, 뒷다리는 정력에 좋다고 연산군이 잡아오라고 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베트남에서는 메뚜기가 워낙 고단백이라 ‘날아다니는 새우’라고 부를 정도다.

그러나 요즘은 농약으로 인해 자연산 메뚜기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어린 시절 틈만 나면 참새 쫓고 메뚜기 잡고 놀았던 기억은 그리운 옛 추억이 돼버렸다.

지금처럼 누런 황금물결이 들녘에 펼쳐지면 으레 생각나는 게 옛 메뚜기 잡던 추억들이다. 그 추억들이 벼 알갱이처럼 같이 여물어 간다.

문장주 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