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는…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위한 대규모 수리시설을 가장 먼저 만들고, 넓은 땅을 개간한 곳이다. 그런 노력이 쌓이고 쌓여, 언제부턴가 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곡창이 된 곳이다.

수탈당하고 반역한 땅이란 인식은 전라도를 한쪽 면만 본 것이다. 문제에 먼저 직면하였기에, 앞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제 몸을 부셔 벽을 깨뜨리려 애쓴 사람들의 땅이라 해야 맞다. 전라도 천 년은 ‘한국 현대사’의 표층 아래 의미심장한 지층을 이루어 쌓여있다. 그것을 보여주고자 이 글을 쓴다. -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에서

전라도는 한반도 서남단에 위치한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북도를 일컬으며 벽골제 이남의 땅이라 하여 호남으로 불리기도 한다. 광주광역시의 면적은 501.18Km², 2020년 현재 기준으로 인구수는 145만 6천여 명이며, 전라남도의 총면적은 1만 2,312.92㎢ 인구수는 약 186만2천 명이다. 전라북도는 총면적이 8,066.43㎢ 인구수는 181만5천여 명이다. 전라도는 고려 현종9년 1018년 전주와 나주에서 이름을 따 명명하였다. 지난 2018년은 전라도 정도 1000년이 되는 해였다.

전라도는 곡창지대의 하나로 온나라를 먹여 살리는데 크게 일조를 해왔으며 임진왜란 구한말 의병활동 동학혁명 광주학생운동 광주 민중항쟁 등에서 보듯 반외세 민족자주·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핏빛 전위로 어둠의 때에는 주저없이 몸을 던져 정화의 숨결을 우리 역사의 갈피마다 선명하게 불어넣어 왔다. 또한 판소리, 그림 등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고 다양한 산물이 생산되는 곳이라 정갈하고 맛깔스런 음식문화를 발전시켜온 풍요로운 땅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현대사에 들어서는 역대정권들의 배제와 고립이라는 지배 전략의 결과로 하여 소외와 차별의 땅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하와이’ ‘따블빽’ ‘일곱시’ ‘홍어’ 등의 비아냥에서 보는 것처럼 편견과 폄훼에 시달려 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동래성을 격파하고 북상하여 5월 2일 한양을 점령하고 6월 13일 평양을 함락하기에 이른다. 조선천지가 왜군의 말발굽아래 유린되었다. 오직 전라도만이 왜군의 점령을 면했다. 전라도는 의병을 조직하여 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며 또한 조선의 유일한 보급기지가 되어야 했다. 병사의 징발과 군량미와 각종 무기의 보급은 온전히 전라도의 몫이었다. 전라도의 운명이 곧 조선의 운명이었던 셈이다. 1592년 11월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진주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했던 왜군은 다시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1593년 6월 21일 진주성을 포위하고 공격한다. 충청병사 황진과 함께 수성(守城)을 주장한 전라도의 의병들 즉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은 이 전투에서 모두 순국한다.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 하던 날 이순신은 여수에서 한산도로 진을 옮기고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편지를 보냈다.

‘홀로 가만히 생각하니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입니다. 만약 호남마저 잃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한산도에 진을 옮겨서 치고 바닷길을 차단할 계획을 세웠습니다.’(竊想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 是無國家 是以昨日進陣于閑山島以爲遮海路之計)

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10일까지 일제는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에 나선다. 나중에 20일을 연장하여 10월 30일까지 지속된 토벌작전은 전라도 특히 전남 지역의 의병을 토초화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대구의 임시파견대가 주도하여 보병2개 연대 2260명, 현지 경찰, 헌병보조원등과 해안 봉쇄를 위해 수뢰정 4척을 동원했다.

일제가 토벌작전에 나선 이유는 1908년 들어서부터 의병의 활동의 중심이 전라도 일대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1908년 호남의 교전의병수는 전국의 24.7% 일제군경과의 교전회수의 25%였고 1909년 교전의병수는 60.1% 교전회수는 47.3%에 이르렀다.

일제의 토벌작전은 살인과 방화와 약탈을 무차별 자행한 세계사에 그 유례가 드문 포학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으며 호남의병들과 민간인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매천 황현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 그 무렵 전남의병들의 피해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왜인들은 길을 나누어 호남의병을 수색하였다. 위로는 진산, 금산, 김제, 만경, 동으로는 진주, 하동, 남으로는 목포에 이르기까지 사방을 그물을 펼치듯이 포위하였다. 촌락마다 샅샅이 수색하기를 마치 참빗으로 빗질을 하듯 집집마다 뒤지다가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으면 즉시 죽였다. 그리하여 도로마다 인적이 끊겨 이웃 마을조차 연락이 두절되었다. 의병들은 목숨을 부지하려고 삼삼오오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몸을 감출 수 없었다. 강한 자들은 돌진하여 싸우다가 죽었고, 약한 자들은 기어 도망하다가 칼을 맞았다. 점차 쫓기어 강진, 해남 땅에 이르렀으나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이 죽은 자가 수천 명이나 되었다.”

“전남 의병으로 일본군에 의해 사망한 사람은 374명이고, 포로로 잡힌 사람은 1천5십5명이며, 총을 빼앗긴 것이 295정이고, 군도(軍刀)가 330자루였다"

일제는 체포된 의병들을 ‘폭도’로 지칭하고 인분(人糞)을 바가지로 퍼먹이는 등 온갖 고문을 자행하였으며, 강도 살인죄로 몰아 처형하거나 머리를 깎아 도로공사(지금의 국도 2호선인 해남–하동간 도로)에 강제 동원하였다. 토벌작전 이후 국내 의병활동은 현저하게 활동이 위축되고 국외로 점차 근거지를 이동하여 독립운동을 이어가게 된다. 사학자 김의환은 이 당시 호남의병의 활동에 대해 “실로 후기(1909) 호남의병항쟁은 저항민족의 전통과 그 기상을 다시 한번 장식한 위대한 항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는 한겨레신문 정남구 기자가 지은 책이다. 총 8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 ‘코없는 사람’과 6장 ‘혁명’은 위에 언급한 호남 의병의 활동과 동학혁명을 다루고 있다. 2장 ‘불이문’(不二門)은 조선불교를, 3장 ‘신선’은 신선을 꿈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4장 ‘땅’은 전라도 농경지를 일꾼 사람들의 역사를, 5장 ‘선비’는 전라도의 유학자와 그 계보를 전한다. 7장 ‘개벽’은 동학 증산교, 보천교 등으로 이어지는 개벽사상을, 마지막 8장 ‘밥’은 조선말에서 1950년까지 토지에 얽힌 갈등과 토지개혁을 고찰한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는 전라도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사실에 입각해 전라도를 재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전라도 이야기는 알맹이 없이 빈껍데기만 유통 된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이 책을 쓰게 했다”는 지은이의 고백처럼 전라도의 곳곳에 튼실한 알맹이를 채우려 노심초사한 그의 노고가 여실히 돋보이는 책이다. 지은이는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엄숙하게 선언했던 조선의 22대왕 정조 임금의 어조를 빌어 말한다.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김다록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