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 이론을 넘어,
역사와 운동을 향하여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민족경제론』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지식인들이 다양한 연구와 분석을 내놓았다. 정윤형(전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은 민족경제론이 1960년대 후반 한국 자본주의가 종속적 발전의 길로 치닫던 시기에 눈에 띄게 훼손되어가는 민족적 자주성과 건강한 민중적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요구에서 출발했다고 보았다. 민족경제론이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긴 했지만,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에 대응하는 실천적 이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론은 유신시대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계기로 고양된 민중운동 속에서 그 실천적 의미를 획득했다고 분석했다.

『민족경제론』은 박정희가 자립경제론을 내세우면서도 지극히 비자립적인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매판성이 강회되는 데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박현채 사상의 계승자로 알려진 조석곤(현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은 민족경제론을 국민경제 형성에 관한 이론이자 실천적으로는 국가 형성 프로그램이라고 보았다. 박현채가 말하는 민족경제론이란 해방 이후 정부가 주도해온 근대화 프로젝트와는 구별되며, 민족경제 안에 실천적이면서도 체제 변혁적인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한편 전철환(전 충남대 명예교수)은 민족적 생존권의 확보와 발전이라는 민족주의적 요구를 바탕으로 민족경제의 주체적 발전과 그것에 따른 외국자본 및 매판자본의 상호 관계 속에서 민족경제가 구성되는데, 이를 이론적으로 해명하는 논리로서 민족경제론이 제기되었다고 분석했다. 즉 민족경제론을 기존의 경제론을 받아들이면서 민족 주체적인 인식을 보완한 이론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보완만으로는 현상의 다양성과 실천상의 여러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박현채가 시도한 보완은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과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박영호(전 한산대 경제학과 교수)은 연구는 서구 민족경제의 발전 맥락 속에서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검토하고 있어서 상당히 이채롭다. 그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에 대한 편협한 인식에 대해 제고를 요청하면서, 이 이론이 고립적∙자급자족적 경제구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서구의 역사에서 대두된 민족경제론들 가운데서 고립적∙자급자족적 경제구조를 추구한 경우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민족경제론이란, 모든 독립국가들이 세계 경제 속에서 자국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추진해온 독자적이고 다양한 경제정책과 경제이론을 전부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인 셈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제국주의 침략과 맞닥뜨린 상황에서는 반제국주의적 경제론이 민족경제론이며, 경제 종속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탈종속의 경제이론이 민족경제론인 것이다. 시장과 무역 자유화 때문에 민족경제가 받는 피해가 이득보다 크다면 보호무역주의 경제이론이, 반대로 민족경제의 활로가 무역 자유화에 있다고 판단된다면 자유무역론이 민족경제론이 될 것이다. 또한 계급 갈등과 빈부 격차가 극심하고 실업 증대, 환경 파괴, 민족 분열의 조장으로 기존 체제의 의미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체제 변혁을 위한 혁명의 경제학이 민족경제론으로 등장할 것이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았는데, 일본인 경제학자 다키자와 히데키(瀧澤秀樹, 현 일본 고난대 교수)는 체제가 다른 남북 전체를 포괄하는 관점에서 민족경제론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그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민족경제가 제기되었다고 보았다. 분단된 민족 전체의 생존 기반과 통일을 고려한다면, ‘국가’에 대응하는 ‘국가경제’는 적절한 개념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또한 그는 남한은 자본주의, 북한은 공산주의라는 서로 다른 생산양식을 기초로 하는 사회이기에 체제 관통적인 특정한 생산양식과는 일단 분리된 ‘민족경제’가 제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점은 전 조선에서의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전망으로서 제기된 북한의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과도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