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이 에피소드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이 뜬다. 극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동원된다.

중요한 일일수록 아주 간단한 데서 펑크가 난다. 아니나 다를까? 실시간 방송을 맡아줄 김포에서 자동차로 온다는 교수님, 연극은 시작되는데 아득하다. “차가 밀려서,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이라...” 핑계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연출인 내가 핑계 댈 게 없어 탈이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극은 시작된다.

녹음실은 꼭 사과 궤짝만 하다. 세 사람이 바짝 끼워 서서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드니 오죽할까, 방음구조란 기본적으로 단열구조와 같다. 단 10분이면 땀이 겨드랑이를 타고 흐른다. 옆 사람의 목소리는 헤드폰을 통해서 들을 수밖에 없다. 마치 머리 위에서 샤워를 내리는 듯, 맹맹한 소리다.

내 목소리는 왜 이다지도 볼품이 없는지, 요들 공주와 김 대표는 스피커가 터질 만큼 빵빵한데 내건 기죽어서 쭈그러드는 목소리다. 나중에 편집과정에서 엔지니어가 어느 정도 높이지 않았나 싶다. 여하튼 배역과 시나리오에 따라 녹음이 끝나면 편집용 파일이 만들어지고, 우리는 밖에 나와 땀을 닦는다.

우린 현장 땜빵이라고 하는 시나리오 외의 상황에 항상 대처해야 한다. 과학실험과 연극은 닮은 게 너무 많다. 약간의 실수도 방송사고로 이어진다. 또 모든 게 다 쓸모가 있다. 버릴 게 없다. 그래서인지 실험자들은 마누라 속옷 끈을 빼고는 다 필요하다고 한다.

불현듯 찾아온 특이점

경기 의왕의 ‘라우리안 카페’에서의 90분간의 초연은 대폭발이었다. 연극은 크게 3개 부분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부분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람한테까지 오게 됐는지를 막대 인형들을 등장시켜 설명한다. 인형극이 끝나면 내가 의학박사로 나와 코로나19 시작부터 코로나19 이후 미래까지 설명하는 ‘팝업 콘서트’를 진행한다.

두 번째 부분은 이은경 천사가 악기를 연주하며 요들 메들리를 같이 부르고, 세 번째 부분에서는 김성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북한의 5살짜리 가수 김솔매 양을 패러디하여 과학적, 의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마리오네트인형극을 펼쳤었다.

내가 처음에 어떻게 해서 인형극을 시작했을까? 이상하게 잘 기억이 안 나지 않는다. 중국 저우왕의 책 때문일까, 평상시의 과학자의 사회적 책무일까? 집안 어른 숭모회 사무실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기회이었을까? 그 점도 한몫했으리라. 이를 싱귤래리티 포인트(Singularity Point, 특이점)라고 한다. 꼭 과학이나 수학에만 쓰는 게 아닐 것이다. 몇 가지 상황이 겹치면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나는 그 지점을 사람들은 싱귤래리티 포인트라 정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거기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타인의 전공과 타인의 밥벌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입으로 말한다. 삶과 배움의 융합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내 것을 개방하고 상대하고 서로 공유하여 또 다른 하나를 만드는 걸 이른다. 말로는 쉽다 하나 몸으로는 어렵다. 과학기술 전공자로서 아트나 컬쳐 영역을 한다는 건 융합도 융합이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자신의 영역 침범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연극이 끝나면 잠깐동안은 공황에 빠진다. 정신이 나간 상태가 한참을 지속된다. “내가 뭘 한 거지? 내가 여기에 와 있을까?” 정신이 나간 상태가 한참이나 지속된다. 그러나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정신이 들며 공허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순수하게 기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항상 “이게 될까?”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객관식 문항에 가두려 한다. 하지만 답은 고민했던 게 무색할 만큼 불현듯 찾아온다.

일생을 과학기술자로 지냈던 내가 퇴임 후 과학문화 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할 길을 찾던 중 뜻밖에 거주지인 경기도 군포시 산본에서 답을 찾았다. 지역 상황을 살펴보다 한 인형극업체가 눈에 띄었고 “과학과 인형극이 융합한 과학인형극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과학인형극팀은 사이언스와 피노키오를 합쳐 ‘사이피노’로 이름 지었다.

사이피노 안녕!

화가 박시유의 ‘코로나 19 이후의 한국’ 작품

문정기 화순저널 고문
박사 기술사, 한국기계연구원, 광주테크노파크원장, 국가과학기술위원,(장관급),
조선대 메카트로닉스과 교수, 현 만안연구소 소장, (사)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