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같은 수줍은 미소를 간직한, 통칭 6학년 5반의 늦깎이 야학생 이수현 님을 화순저널 인터뷰석에 초대했다. 요양보호사로 간병인으로 아픈 환자들을 돌보는 삶을 살면서도 자아실현을 위해 3년째 화순야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수현 님의 이야기를 옮긴다.<편집자 주>

▲ 어려운 가정 형편에 중학교 입학 포기

한국전쟁 후 4년이 흐른 어느 해 늦은 봄, 전남 신안군에 있는 어느 섬마을에서 나는 태어났다. 아주 어렸을 적에 광주로 이사를 나와 광주 계림국민(초등)학교를 다녔다. 가난한 집안에 형제는 1남 7녀로 여덟 명이나 됐다. 중학교에 다닐 집안 형편이 아니라 스스로 중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열 살 더 많았던 큰언니가 ‘수현이는 공부를 잘하니까 중학교는 내가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자 24살이었던 큰언니가 갑자기 시집을 가게 됐다. 중학교 입학하고 싶었던 내 꿈도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 공부가 하고 싶어서 야간 중학교에 다니려고 했지만 이것 또한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쉽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화순야학 중학생이 되다

결혼 후부터는 두 아이의 엄마로 열심히 살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장성해 자리잡고 잘 살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 못 했던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를 하기로 했다.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화순야학 나무와숲학교를 알게 됐다. 2019년 여름에 화순야학 학생으로 등록했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밤이면 야학의 학생이 돼 열심히 공부했다. 어느 때는 너무 피곤해서 학교에 가지 않고 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더 늦어지면 안 되지'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학교로 옮겼다.

너무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화순야학 선생님들을 보면 수업 때마다 감격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얼마나 가슴이 떨리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준비해 공부하고 있는 이수현 학생

▲ 괜찮다. 할 수 있다. 포기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공부하고 나서 공부한 내용으로 시험을 보면, 배운 내용을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만다. 생각이 안 나서 문제를 못 풀게 되면 부끄러워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께서 ‘괜찮다’, ‘할 수 있다’, ‘포기하면 안 된다’고 용기를 주셔서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 중학교 졸업시험에 당당히 합격

작년부터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지만 굴하지 않았다. 나와 같이 야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공부했다. 2020년도 1차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응시했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들은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합격도 당당하게 했다. 얼마나 감사하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해 바로 2차 고졸 검정고시도 바로 응시했는데 다행히 국어, 사회, 국사, 도덕을 합격했다. 나머지 과목인 영어, 수학, 과학만 올 8월에 있는 2차 검정고시를 보면 된다.

지금은 24시간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어서 학교에 결석을 많이 하게 돼 선생님들께 죄송하다. 또 혼자서 공부하려니 힘이 들 때도 많다. 그래도 교장 선생님과 과목별 선생님들께서 늘 따뜻한 말로 격려해 주시고 챙겨주니까 포기하지 않고 해나가고 있다.

간병인으로 일하면서도 틈틈히 달력 뒷장에다가 빽빽하게 영어 단어를 적으며 공부하고 있다.

▲ 큰언니의 응원이 큰 힘

십여년 전, 나는 뇌 쪽의 동맥이 부풀어 올라 뇌수술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배운 것을 더 잘 잊어버리는 것 같다. 더 많이 읽고, 쓰고, 외우며 공부하고 있다. 힘들 때면 독학으로 문학학사를 취득했던 자랑스런 아들을 생각하며 나도 꼭 해내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중학교에 보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큰언니의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된다. 내가 일을 마치고 서둘러 야학에 가려고 하면 밥을 먹어야 공부도 잘 되고 건강도 지킬 수 있다고 밥을 차려주고 잠깐이라도 쉬었다가 학교에 갈 수 있게 챙겨준 큰언니의 도움이 정말 큰 힘이 됐다.

큰언니도 나와 같이 공부하고 싶어서 야학에 등록은 했었지만 다리가 너무 아파 4층까지 올라올 수가 없어 지금은 학교를 쉬고 있다. 다리가 나아지면 큰언니도 학교에 다녀서 못 배운 한을 풀길 바란다.

▲ 간절한 소원 하나

작지만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 여러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던 내 딸이 벌써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둔 학부모가 됐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도 공부하는 엄마를 보고 내 딸도 용기를 내서 공부를 다시 했으면 좋겠다.

▲ 배우지 못해 느꼈던 주눅과 눈치에서 벗어나 당당해지길

또, 여러 사정으로 어렸을 적에 공부를 못 했던 분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저처럼 공부를 해나가면 좋겠다. 시간을 내는 것도, 밤에 공부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중학교 졸업장,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으면 평생 기죽으면서 살아왔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주눅 들지 않아도 되고 못 배워 무식하다는 말을 들을까 하는 눈치를 안 봐도 된다.

공부를 하기 전에는 뭘 잘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도 없었고 부족하다고 느껴져 자꾸 숨고만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큰 꿈을 꿀 수가 있다는 게 가장 큰 행복인 것 같다.

2020년도 1차 검정고시에서 중학교 졸업시험에 합격 후 졸업식에서 소감을 전하고 있는 이수현 학생(위, 오른쪽 사진 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