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찾은 야사리 은행나무
볼 때마다 늘 말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나무이다.

500년 이상 인간사를 지켜본 나무 앞에서
무슨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을까.

연두빛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푸르다.
아름드리 딱딱한 줄기를 뚫고 나온 새싹들이 옹기종기 연두빛으로 해맑다.
생명을 지키고 피어나게 하려는 몸부림으로 뿌리는 온통 옹이투성이다.

누군가 말한다.
“이 나무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손자의 손자까지 다같이 살고 있구마잉”
너무 오래 살아서 나무수염이 고드름처럼 자라나 혹 모양으로 붙어있다.

옹이를 뚫고 나온 연한 이파리가 햇살의 젖을 빨며 아가처럼 순하다.

은행나무 옆집에서 태어나 자란 중년의 한 남자가 서울에 살다가 휴일이라 모친을 보러 고향집에 내려왔나보다.
“저 어렸을 적에는 가지가 무성해서 중간쯤 올라가 있으면 안 보였어요. 일하기 싫은 날은 올라가 숨어 있었죠. 엄마가 불러도 못 들은 체하고 대답하지 않으면 포기하고 밭으로 나가셨어요. 그러면 살그머니 내려와 종일 동네 친구들과 놀았었죠.”

나무는 조선 중기에 태어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해방, 곧이어 한국전쟁, 4·19혁명, 군부독재, 5·18광주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 촛불혁명까지 모진 굴곡의 역사와 희망과 기쁨의 역사적 순간들을 굵직하게 겪으면서도...

일하기 싫고 친구들과 놀고 싶어하는 어린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왔구나...

야사리 은행나무 아래에 서면... 말이 사라진다...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03호

전남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182-1

이 은행나무는 조선조 성종(1469~1494재위) 때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철 따라 자태를 바꿔가며 국운의 융성과 나라의 화평을 알리고 때로는 우는 소리를 내어 전란과 나라의 불운을 알렸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