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표지판 청소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거든. 대부분의 어른들은 표지판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고, 시와 음악을 아는 사람 따로 있다고 생각하잖니. 청소부가 시와 음악을 알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지. 그런데 그렇지 않은 아저씨를 보자 그들의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진 거야. 그들의 고정 관념은 수채통으로 들어가, 타버린 종이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어... -<행복한 청소부> 중

노동은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구체적으로는 생계의 수단이자 인간 실존의 자기발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육체노동은 예로부터 “정신을 쓰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힘을 부리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라거나, 혹은 진리의 관찰(θεωρία,Theoria)을 방해하고 이성의 눈을 흐리게 하는 노예에게 강제된 고통스럽고 비속한 활동(πόνος,Ponos)으로 비하되어 왔다. 이러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이분법은 그 담당자인 귀족과 천민이라는 계급적 표현과 함께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위력한 노동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행복한 청소부>는 아담한 그림책이다. 노동의 이분법을 초월하여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확장하고 고양시켜가는 거리의 표지판을 닦는 한 청소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기가 맡은 거리와 표지판을 오직 사랑하며 ‘더러움과의 싸움’을 인생의 전적인 사명으로 알고 묵묵히 살아가던 청소부는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자기가 닦던 표지판이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위대한 작가 예술가들의 이름임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의 한 켠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어떤 결핍을 느끼며 그들의 생애와 예술을 탐험하던 그는 뜻밖에 거리의 강사로 유명세를 타게 되어 텔레비전이 주목하고 대학에서 강연 요청이 밀려오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거리와 표지판을 사랑하는 ‘행복한 청소부’로 남는다.

시방 한국사회는 경제적인 효율만이 최고선이며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조한 노예들의 난장판으로 전락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숨 가쁜 물신숭배를 질주하고 있는 이 무질서한 행렬은 자신과 전체를 아우르는 진지한 성찰이 결여된 오직 돈의 추구만이 생을 지배하고 있는 유일한 지상명령이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도 몸을 움직이는 활동은 3D 업종이라 치부되듯이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무엇보다도 돈이 되지 않음으로 하여 ‘페스트보다 싫은’ 더욱 멀리해야 할 끔직한 괴물이 되고 있고 마빡을 굴려 많은 돈을 획득하는 행위야 말로 마치 고상한 품격의 능력인 양 추앙되고 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인간다운 정신과 정서가 펼쳐질 여지가 없다. 자신과 모두를 황폐한 불구로 비하시키는 고갈된 삶의 여정만이 노정한다.

사람은 육체이면서 정신이다. 지식과 예술이 특정한 부류의 암호이거나 전유물일 필요는 없다. 한 손에 호미와 망치를 들고 또 한손은 인간의 유장한 정신을 유영하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동시적 체현, 소박한 주경야독, 자신과 타자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조화로움 그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고양하는 존재의 사건이 아닐까?

<행복한 청소부>의 저자 모니카 페트(1951- )는 독일의 한적한 시골에 살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는 작가로 잔잔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 외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생각을 모으는 사람> <바다로 간 화가> 등이 있다.

글쓴이 : 김다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