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노부유키라는 한 극우파 일본인이 지난해 6월 18일과 19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입구와 종로구 일본대사관 맞은 편 위안부 소녀상 앞에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일본식 표기)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한국어와 일본어로 적힌 말뚝을 세운 후, 동영상을 찍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위안부 소녀상을 ‘매춘부 소녀상’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말뚝테러’를 자행하여 우리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고 있다.

불과 수십 년 전,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 지배하며 야만적인 약탈과 반인도적인 만행을 야수처럼 일삼았던 일본과 일본인들이 진정한 반성과 사죄와 배상은 무책임하게 외면한 채, 인류의 양심을 거역하는 부끄러운 행동을 거듭 죄의식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 동경의 우에노 공원에는 왼손에 칼을 들고 오른손에는 개를 데리고 있는 뚱뚱한 사내의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다. 일본인들은 이 동상을 자주 참배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한다. 동상의 주인공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며 참의 겸 육군대장을 지낸 사무라이 출신의 사이고 타카모리(西鄕隆盛)라는 자로, ‘정한론’(征韓論)의 적극적인 주창자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결국 권력에서 축출되고 세이난 전쟁에서 패하여 자결하였지만 오늘날에는 메이지 유신의 공로자로, ‘대륙진출’의 영웅으로, 일본 우익의 원류로 숭앙받고 있다.

또한 김옥균 박영효 등을 비롯한 개화파를 지원하여 조선에 친일적인 개화정권을 세우고자 획책하였지만 실패하게 되자 ‘조선 인민을 위하여 조선의 멸망을 축하 한다’는 망언과 함께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을 주창했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역시 게이오 대학의 설립자이자 일본 최고의 계몽사상가로 일컬어지며 일만 엔 권 지폐에도 그의 초상화가 실려 있을 정도로 높이 추앙받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통한의 고통이자 침략의 원흉일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을 일본인들은 국가를 근대화하고 융성시킨 영웅이자 ‘대동아 공영권’ 건설의 선구자이며 받들어 본받아야할 롤 모델로, 일상 속에 숨 쉬듯이 학습 받고 있는 셈이다. 어디 그뿐이랴.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을 무슨 위인들이나 되는 양 모아 놓고 참배하는 것도 그렇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평화와 공존을 가르치기 보다는 오히려 공교육마저 교과서를 왜곡해 가며 그들의 침략을 미화·은폐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 우익들의 철없는 경거망동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비하 조롱하는 정치지도자들의 망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구한말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글 읽은 사람의 책임을 통감하며 분연히 자결한 매천 황현(黃玹)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수많은 의병들의 의로운 투쟁과 죽음도 전하지만 다음과 같은 가슴 뭉클한 얘기도 전한다.

“이완용이 종로를 지나가는데 나이 16, 7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수레를 계속 뒤따라가며 꾸짖기를, 매국노 이완용아! 하니 명령을 내려 경찰서에 가두었다.” (李完用過鐘路, 有一童年可十六七, 隨車罵曰, 賣國奴李完用, 令拘之警署)

“의병장 연기우가 길에서 춥고 굶주려 빈사상태에 있는 자기 아들을 만났다. 그의 부하가 불쌍히 여겨 몰래 50환을 주었다. 이를 안 연기우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군수자금인데 누가 감히 사적으로 쓸 수 있겠는가? 하며 급히 도로 빼앗았다.” (義將延基羽, 路遇其子凍餒瀕死, 其部下憐之, 暗子予五十圜, 起羽大怒曰, 此軍需也, 孰敢私用, 遽奪之)

한국현대사는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일제에 적극 협력했던 자들이 민족정기의 준엄한 심판에 단죄받기는 커녕, 대를 이어 득세하고 그 지배를 공고히 해온 오욕의 역사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를 더욱 얕잡은 탓인지 유독 한국에 대한 일본정치인들의 망언은 질기게도 계속되어 왔다. 일본인들에게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니 “마치 다시 돌아 가야할 고향을 노래하는 것 같아서”라고 대답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아직도 저들의 무의식속에는 한반도를 자신의 땅으로 착각하는 제국주의적 미몽이 독사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말뚝테러’와 같은 일본인들의 오만하기 짝이 없는 몰염치한 행태를 보며 우리가 오늘 반드시 뼈아프게 기억해야할 사실은 의병들의 의로운 투쟁과 죽음, 이완용을 꾸짖던 소년의 분노와 기개 그리고 굶주려 죽어가는 아들을 끝내 외면하고 풍찬노숙의 길을 가야했던 이 땅의 애비 에미들의 피맺힌 울음이며 아픔인 것이다.

<자유기고가 : 김다록>